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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찰스 펠리그리노 지음, 형선호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과학은 세 번 인간을 중심에서 밀어냈다. 첫번째,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더이상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 두번째, 다윈의 진화설이 나왔을 때.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변했다. 세번째, 프로이드가 '무의식'의 개념을 들고 나왔을 때, 인간의 이성은 동물과 다른 특별함을 부여한다는 믿음이 무너져 버렸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며, 지구에서 가장 발달한 생명체, 진화의 정점,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환경론의 논리는 아직까지도,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지 말고 보호해야 한다 - 는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환경론자들은 전체 생태계의 조화에 있어서 다른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들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더스트>의 작가 찰스 펠리그리노는 그것마저도 깨버리려고 덤벼든다. 작가 후기의 첫머리를, 그는 이 말로 장식한다. '지구의 3분의 1만이 육지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생물의 4분의 3이 곤충이며, 그 중 3분의 1이 풍뎅이이다. 그래서 나는 신이 풍뎅이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멸종해 버린다 해도 지구에는 아무 탈도 없으며, 생태계는 오히려 전보다 더 번성할 수 있다. 그러나 곤충이 없어진다면? 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곤충이 사라져 버렸다면,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스트>의 전체 줄거리는 이런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저자는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오싹한 출발점 -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진드기 떼와 흡혈 박쥐의 습격, 갑작스러운 변동, 순식간에 다가오는 파국 - 부터 그 와중에서 혼란에 싸여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박진감있게 그려가고 있으며 그 속에 현대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가설과 의문들을 녹여내고 있다.

사실, 이 책 속에 들어있는 새로운 이론과 가설의 숫자를 제대로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복제 기술이나 호박에서 곤충 유전자를 알아내는 방법(이 기술은 쥬라기 공원에서 나왔지만 본래 아이디어는 저자의 것이다)은 물론이고 외계에 생명체가 있는가, 공룡은 왜 멸종했는가, 광우병의 메카니즘, 박쥐와 곤충의 역할, 이기적 유전자, 생물학적 시한폭탄에 이르기까지... 충격적인 시작과 숨돌릴 틈없이 위기, 위기로 이어지는 스릴러 식의 진행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대중소설에 더 가깝지만, 풍부하고 정확한 과학 지식과 상상력, 그리고 그 뒤에서 던지는 의문은 SF라고도 할 만하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결국 저자는 자신 또한 인간임을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다. 신 - 혹은 자연 - 혹은 지구는 아무것도 답해주지 않지만, 우리는 전진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더스트'라는 제목은 아무래도 기독교의 교리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인간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것. ^^

의심할 여지없이 주인공이 저자를 모델로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재미있다는 기분이 되었지만(아무래도 억울한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저자는. 대개의 학계에서 이단으로 꼽히는 학자들이 그렇듯), 확실히 현대 과학은 전체적인 조망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가설은 그것이 아무리 혁신적이라 해도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지금 우리의 현실에 경종을 울리며.

별을 다섯개 줄 수 없었던 것은, 너무 많은 사실을 녹여내려 한 탓인지 깊이가 부족하다는 인상 탓.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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