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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ㅣ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 지음, 김보경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하면 떠오르는 단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메리칸 드림', '뉴욕 맨하탄', '할리우드', '아이비리그', '세계 최강대국' 등등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자유'와 '민주주의'도 그 중 하나로써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한국전쟁 때 무시무시한 공산당 괴수들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줬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기 때문일까. 자유가 넘치는 나라이자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미국은 적지 않은 한국인들의 뇌리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미국은 드라마 '가십걸'에 나오는, '남들이 꿈꾸는 모든 걸 다 가진 선택받은 이들'에게나 자유로운 나라이다. 게다가 애초에 미국이란 국가가 구상될 당시에 나라를 설계했던 주요 인물들에게 민주주의는 '특정 엘리트들에 의한 독점적 통치 체제'를 의미했으며, 국가 형성 과정부터 지금까지 아메리카 땅의 원주민들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 인민들의 목숨과 자유를 빼앗고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미국은 우리에게 완전히 재인식되어야만 한다. 미국을 제대로 알면 그들이 말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허상이 보이고 자본주의의 실체가 보인다. 그리고 그를 위해 가장 유용한 것이 바로 미국의 세계적 석학 노엄 촘스키의 저서들이다. 그 중 하나인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서 촘스키는 짧지만 강렬하게 미국의 치부를 드러낸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의 만행들을 쭉 살펴보면 우리는 '미국이 진정 원하는 것'이 인간 내면 욕망의 무한정 발현을 통한 극단적 이익 추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익은 결코 모두가 아닌 극소수 특정 집단을 위한 것이라는 점도 말이다. 미국은 그것을 위해 전쟁, 군부 쿠데타 반민중 무장단체 지원, 그리고 경제 봉쇄 등을 통해 여러 국가의 인민들에 대해 숱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은 과연 미국이 쇠락하거나 공격적 세계 경영전략을 포기하면 세계는 평화로워질 것 인가 하는 문제다.
최근 미국 발 경제 위기를 미국의 헤게모니와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의 패퇴로 보는 시각도 많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제 유럽연합(EU)이 앞장서서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 말대로 어쩌면 지금의 이 균열을 통해 세계 경제가 유럽 주도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재편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르코지가 말하는 그 '새로운 자본주의'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거리낌 없이 이익을 창출하던 초기 자본주의의 자유(방임)주의가 대공황을 통해 위기를 맞이하자 등장한 것이 루즈벨트 정부의 '뉴딜 정책'처럼 국가의 개입을 통한 시장 규제와 재분배였다. 그를 통해 인민들은 최소한의 국가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 그나마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곧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이마저도 잃고 말았다.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기존 패러다임 내에서 기껏할 수 있는 일이란 시장에 대한 국가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 그 이상이 아닐 진데, 우리는 이미 '영업의 자유'를 부르짖는 자본가들 앞에서 그것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설령 유럽이나 중국 일본 등이 지금의 미국과 같이 주도권을 잡는다고 하여도 이들은 '또 다른 미국'이 될 수 밖에 없다. 각국은 세계 일등국가가 되기 위한 경쟁에서 이기려 군비 증강에 힘쓸 것이며,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미국이 했던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제3세계를 착취할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인간 내면 욕망의 무한정 발현을 통한 극단적 이익 추구'는 성장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미국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국가라도 다 원하고 또 그럴 수 밖에 없다. 역시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다.
초국적 금융자본을 비롯해 거대 다국적 기업과 같은 자본가 세력,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 엘리트들의 이익과 요구에 맞춰 구조화 되어 있는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대부분의 인민은 '잉여인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개선되어야만 할 일이고, (신)자유주의를 넘어 자본주의라는 근본 틀 까지도 충분히 전환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바꿀 수 있다는 신념과 촘스키가 늘 주장하듯 인민의 각성을 통한 감시와 저항이다. 이것들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불합리한 현실은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