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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아름다움
심상정 지음 / 레디앙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수십년간 부단한 인내와 노력으로 한 길만을 걸어오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더군다나 그 길이 자신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희생을 전제로 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심상정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을 오랜 시간 한결같이 걸어 온 사람이다. 그녀는 대학 재학 시절의 학생운동을 거쳐 이후 공단에 취직하여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하고, 금속노조에서 활동하는 등 2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노동운동의 일선에 서 있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심상정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으로서 특유의 성실함과 명확한 논리를 내세워 의정활동을 한 결과, 곳곳에서 최우수 의원으로 선정되었다. 그 활동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것이었음은 두말 할 것 없다. 뿐만 아니라 관료들 동료 의원들 할 것 없이 누구나 그녀를 인정해주었고, 남녀노소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지지자가 되었다. 심상정은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과 어떠한 사안이나 사람을 대할 때 '진정성'을 내보인다면 이념과 계층을 초월해 어디서든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었다.
그런 심상정의 책이 나왔다. 그녀의 자서전『당당한 아름다움』은 진솔하고 소박한 문체로 이제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서문에서 심상정은 '이념'만으로는 이런 삶을 살 수 없었을거라고 이야기 한다. 실제로 운동에 헌신적이었던 사람들 중에서 현실 사회주의 붕괴의 여파나, 고됨을 견디지 못해 중도에 변절하거나 포기한 경우가 꽤 있었다. 그녀의 지난 살이가 가능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녀의 활동들이 단순히 이념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 그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보수만 존재하는 좁은 이념적 대표체제를 가진 한국 땅에서 대변되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은 이제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로써 일관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0년 권력을 잡은 소위 '민주화세력', '사이비 자칭 진보 세력'은 뒤떨어진 시대 감각으로 줄곧 정치적 민주주의에만 집착했을 뿐,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서민들의 열망은 무시했고 심지어 후퇴시켰다. 그 결과 '정치'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진보'라는 말까지도 오염되어 버린 지금, 이 개념들의 본래의 의미와 기능을 되찾아 주는 것이 진보세력과 그 진보세력의 큰 자산 중 하나인 심상정에게 부여된 앞으로의 의무이자 역할일 것이다.
비록 민주노동당의 혁신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실패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출마한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아깝게 낙선하였지만, 심상정의 날개가 꺾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제 관념과 주장의 진보정치를 넘어서 시민들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 함께하는 '생활정치의 모범'을 만들어 나가려고 한다. 덕양구에 문을 연 '마을학교'가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의 생활정치 실험도 꼭 성공을 거두고, 4년 후 19대 국회에서 다시 그 '당당한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생각에 이명박의 '시장독재'를 허락한 한국 정도 수준의 사회가 정치인으로 갖고 있기에 심상정은 아까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그녀 같은 정치인이 절실하다. 이 책을 읽고나면 심상정의 팬이 아니었던 사람은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될 것이며, 팬이었던 사람은 더욱 그녀를 아끼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그녀의 살아온 궤적을 통해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실 그리고 앞 날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의미있는 텍스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재밌다'. 한번 쯤 '사서'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