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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를 처음 알게 된 게 언제일까. 대학생? 아님 사회인이 되고 나서? 아마 대학생 때가 아닐까 싶은데, 일본 작가로는 세 번째로 접한 동시에 좋아하게 된 사람이니 내 총애(?)를 받고 있는 여러 일본 작가들 중에서도 꽤 초기 멤버라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내 일본 작가에 대한 취향도 꽤나 뚜렷하게 나뉘는 편이다. 현대 작가들은 하루키,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요시다 슈이치, 오쿠다 히데오, 온다 리쿠 등처럼 가벼우면서도 개성 있는 문체를 구사하고 있고, 저 멀리 근대로 가면 다자이 오사무처럼 어둡고 무거우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편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옛 작가이면서도 현대 작가들처럼 밝은 분위기의 소설을 쓴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요시모토 바나나는 특히 밝고 가벼우며 톡톡 튀는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다. 그런 탓에 처음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는 ‘뭐야, 남는 게 하나도 없잖아’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읽고 싶을 때나 기분이 밝아지고 싶을 때면 자연히 손이 그쪽으로 가게 된다.

물론 그의 작품 중 처음 읽었던 것은 <키친>이었다. 읽은 지가 하도 오래돼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게 첫 작품이었던 탓인지, ‘키친’이라는 단어는 ‘요시모토 바나나’와 항상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 이번에 <바나나 키친>이라는 책이 나온 것을 알고는 내용도 모르는 주제에 괜히 반가워하며 ‘이 책은 꼭 사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다. 자신의 아이가 두 살에서 여섯 살이 되는 동안에 쓴 자신의 ‘키친’을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그녀만의 발랄한 문체로 자신의 이야기는 또 어떻게 풀어낼지 무척 기대가 된다. 아마 몽글몽글 음식 냄새가 피어올라 한껏 따스하면서도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부엌과 같은, 그런 맛이 아닐까.

 

 

 

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

나는 동물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하지만 그들을 위해 하는 건 거의 없는 한 사람이다.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눈물을 질질 흘리며 가슴을 부여잡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감상과 마음 때문에 그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도 하는 모순된 인간 중 하나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남극의 눈물>이니 <북극의 눈물>이니 하는 것들도 다운만 받아놓은 채 아직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데, 책으로라면 좀 더 괜찮지 않을까 싶어 선뜩 이 책 <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을 보관함에 담아 넣었다.

이 책은 아주 오래된, 100년 전의 북극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직 문명에 침범당하기 전,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간직한, 아름답고 평화롭던, 아무 걱정 없던 시절의 북극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종종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인간, 가장 나쁜 것도 인간”이라고 하는데,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인간의 난폭함과 잔인함, 그리고 이기성을 반성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고 생각해봤다. 작가가 직접 그린 스케치도 함께 실린다고 하니 책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권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연애낭독 살롱

‘이런 가십거리 가득한 책 따위를 왜 읽냐’고 빈정거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런 책을 선택한 데 대해 나를 수준 낮다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그러는 당신은 순수문학을 즐기는 대단히 고상한 취미를 지닌 사람인가?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나. 때로는 이런 흥미 위주의 글들도 좀 읽어줘야지.

그렇다고 내가 평소에 이런 책을 막 찾아 읽는 편은 아니지만 한 번씩 읽으면 재미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남의 이야기를 하고 듣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는 게 사실 아닌가.

사실 따지고 보면,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접하고 비평할 때 작가의 배경을 알아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건 비평론 시간에도 배우는 내용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예술가들의 연애사도 그들 삶의 한 부분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그들의 연애사는 실제 그들의 작품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피카소도 그러했고, 스콧 피츠 제럴드도 그러했고.

각설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얘기다.

 

 

 

도대체, 사랑

어쩌다 보니 또 사랑과 관련된 책을 고르게 됐는데, 이건 나름 ‘심리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예전에 내가 남자친구랑 헤어졌을 때, 어느 금요일 밤에, 술을 엄청 퍼먹고 침대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던 토요일 아침이었다. 택배 아저씨가 문을 두드리길래 나가보니 난 주문하지도 않은 인터넷 서점 박스 하나를 건네주는 거다. 그것도 알라딘이 아닌 다른 인터넷 서점의 박스를.

배달이 잘못된 것 아닌가 생각하며 박스를 뜯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사랑이라는 이름의 중독> 따위의 ‘사랑’ 관련 심리학 책들 서너 권이었다. 그제서야 누가 보냈는지 단번에 짐작한 나. 친한 언니가 이 책 읽고 빨리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보낸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게 의외로 꽤 도움이 됐다. 내 마음을 다잡는 계기도 됐고,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도 됐고. 나는 평소 심리학 책을 좀 더 심도 깊게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아직까지는 거의 가지고만…) 선뜻 심리학에 다가서기가 두렵다면 사랑을 주제로 한 것들부터 시작하는 것도 흥미를 돋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사랑, 그건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거리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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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2-08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너무 멋진 글인걸요.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름만 알고 관심만 가지고 있었는데 한 번 읽어보고 싶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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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주제에 <하루키 잡문집>이 출간됐다는 사실을 친구가 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서야 알았다. 눈길을 사로잡는 강렬한 주황색에 '우화집'의 느낌이 나기도 하는 귀여운 토끼와 쥐 그림. 꼭 하루키가 아니었더라도 책을 집어들게 했을 만큼 표지부터 마음에 들었다.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를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글들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음악, 음식, 마라톤, 고양이, 번역... 바로 이러한 것들, 하루키가 평생을 그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사람들에게 말해왔던 것들을 보다 자세히 풀어놓은 책,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못다 한 말들을 꺼내놓기 위해 만든 책이 이 <잡문집>이다.

 

내가 하루키 작품을 처음 읽은 게 언제였더라. 아마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빌려본 게 첫 경험 아니었나 싶다. 그를 알게 된 계기와 소설을 알게 된 계기 모두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나 역시 그와 그 책의 명성 때문에 부러 찾아가서 빌려봤던 게 아닌가 짐작된다. 그와의 첫 만남에서 받은 느낌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노르웨이의 숲>보다 <태엽 감는 새>를 읽고 엄청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은 난다. 세 권짜리 낡은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기가 싫어 끙끙거렸던...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하루키도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을 읽다가는 '하루키가 이렇게 늙다니!'라며 혼자 놀라기까지... 그의 글이 식상하고 고리타분해졌다는 게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감각과 문체에 변함이 없어서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제 '노년'에 접어들었는데, 대체 이 늙은이가 무슨 술수를 부리길래 여지껏 이렇듯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는 감각을 유지하고 있느냐, 그 말이다.

 

이 잡문집은 하루키가 젊었을 때, 30대 때 쓴 글부터 포함돼 있어 내가 그를 알기 이전의 그를 볼 수 있다는 즐거움도 가질 수 있다. 그가 그토록 음악에 대해 말하는 이유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그가 글렌 굴드나 짐 모리슨, 바흐 등의 음악과 함께 어떤 추억을 쌓았는지, 재즈가 너무 좋아 하루 종일 재즈를 듣기 위해 시작했다는 재즈 카페를 어떻게 운영하고 꾸려나갔으며 거기에서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도 포함돼 있다. 또,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의 글들을 그가 어떤 생각에서 어떤 방식으로 쓰게 됐는지, 굵직한 사회 현상과 소소한 삶의 모습들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걸 어떻게 글로 풀어내게 됐는지도 그는 가감없이 털어놓는다. 대단한, 동경의 대상이기만 하던 세계적인 소설가가 수줍은 미소와 어눌한 말투를 지닌 보통 아저씨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는 느낌, 그 몽글몽글하면서도 푸근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어 이 책을 읽는 건 즐거웠다.

 

만약 하루키의 팬이 아니라면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도 없을 테고, 설사 읽는다 해도 그리 재미를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관심 없는 사람의 사생활 따위 알고 싶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하루키의 팬이라면 소설가로서의 그, 그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그를 엿본다는 사실에 짜릿한 흥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처럼 '내가 하루키와 친해졌다(심적인 친밀감을 느낀다는 게 아니라 그가 정말 나와 친한 사람이라는)'는 근거 없는 느낌을 가지게 될 만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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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을 보내주세요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남자와 여자, 건강과 병, 동물과 식물, 존재와 무...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말들이 서로 반대되는 개념들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과 우정, 웃음과 눈물, 목욕과 샤워, 사냥과 낚시는? 저자인 미셸 투르니에는 이것 역시 반대되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책의 제목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말놀이의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낀 내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이 책은 상상력을 자극하기보다 지적 욕구의 충족, 그로 인한 쾌감을 자극하는 데 더 탁월한 힘을 지니고 있지 않나 싶다. 사실 요 몇 년 사이 내 고민 중 하나가 상상력과 창의성의 빈곤함이었던 까닭에 이 책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받아들고 꽤 큰 기대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더욱이 작가의 이름을 난 들어본 적도 없지만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니, 더 기대할 만하지 않았겠는가.

 

내가 상상력보다 지식 충족의 욕구를 채울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사실들을 거의 매 페이지마다에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초기 기독교도들의 암호였으며 예수의 숨겨진 이름이었던 것, 초식동물이 섭취하는 식물은 그들의 위에 들어가 박테리아-단세포 동물의 배양에 필요한 양분을 제공하며 초식동물들은 이 박테리아를 먹고 살기 때문에 사실은 육식동물이라는 것, 설탕은 사탕수수와 사탕무 두 종류에서 생산되는데 사탕수수에서는 갈색 설탕이, 사탕무에서는 흰색 설탕이 나온다는 것, 재능(talent)이라는 말이 원래는 상당한 금액에 해당하는 그리스 화폐 단위였다는 것 등은 이 책이 아니었다면 기약할 수 없는 미래까지, 혹은 영원히 알 수 없었을 사실들이다.

 

문제는 초반에는 재미있게, 지적 충족의 허영심을 '가지껏' 채워가며 흥이 나서 읽던 것이 책 후반으로 갈수록 숨을 헥헥 몰아쉬며 더디게 읽게 되었다는 것. 가뜩이나 없는 밑천에 난이도까지 높아지니 그가 제안하는 지식을 소화시키기가 벅찼던 게다. 상상력을 자극하기는커녕 상식이고 지식이고 내가 가진 밑천의 비천함만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순간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즐거웠다. 모르던 사실을 깨닫게 돼서 즐거웠고, 그 즐거움의 깊이가 꽤 크다는 걸 알게 돼서 즐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그 즐거움을 내가 더 탐내리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에, 나는 더욱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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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더 선 시스터 문

으아, 온다 리쿠가 돌아왔다. 처음 읽었던 그녀의 작품이 <밤의 피크닉>. 그래서 난 그녀가 미스터리·판타지 소설을 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더랬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주문한 책이 내리 그런 장르인 것을 알고 찾아 봤더니, 그녀 작품의 대부분이 미스터리, 판타지, SF더라.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은 오랜만의 평이한 스타일의 청춘소설이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같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 세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하니,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던 전 작품들에 대해 연령대는 높아졌다. <밤의 피크닉>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별다른 감정의 기복 없이 이어져나가는 이야기, 그리고 조금 독특한 상황 설정은 어떻게 보면 건조하지만 또 달리 보면 의외로 흥미진진하며 걸리는 것 없이 술술 읽혀진다는 매력이 있다. 아마 <브라더 선 시스터 문> 역시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떨지 모르겠다. 대학생들의 이야기인 만큼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보다 좀 더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기도 하고.

여튼, 그런 이유들로 이번 달 신간 중에서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으로 픽업!

 

 

뜨겁게 안녕

사실 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골라 읽는, 대부분의 경우 편식을 하는 편이라 낯익은 작가의 책을 택하는 모험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왠지 제목이 마음에 들어 살펴보게 됐다. 서른 이후의 삶에 접어든 저자가 써내려간 서울살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나랑 겹치는 부분이기 때문에.

책 소개글로만 대충 짐작할 뿐이지만, 동경하던 서울의 삶에서 깊은 외로움과 황량함을 느끼고, 애증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 또한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지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까지 다룬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굳이 서울생활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삶에 대한 동경과 애증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웬만해서는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라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그닥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 증거로 이런 종류의 책이라고는 <무소유>밖에 읽은 적이 없는 1인인데, 이달에는, 하필, 이 책에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내 마음이 약해져 있고 절박한 것 아닐까 싶다.

정말 이 책을 읽어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곧 평온해질 거야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면, 그래서 조금이나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면 나는 이 책을 쓴 스님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어질 테다.

 

 

책과 여행과 고양이

이 책은 그냥 제목에서 끝났다. 책과 여행과 고양이라니, 내가 좋아하는 세 가지가 다 포함돼 있어.

경향신문 여행 기자로 오랜 기간 살아오며 경험한 것들을 풀어냈다고 하는데, 제목 외에도 기자들 사이에서도 글 잘 쓰기로 정평난이 또한 내 마음에 들었다. 막상 읽어봤더니 뭐야, 장난해!’란 생각이 들면 상당한 배신감을 느끼겠지만.

많은 여행서들이 사진과 글을 가득 담고 있지만 사실은 텅텅 비어 있을 뿐이어서 여행서는 굉장히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고, 애초에 잘 사보지를 않는 편이지만 이 책은 왠지 여러 면에서 괜찮을 듯한 예감이 든다. 부디 책과 여행과 고양이라는 제목에 충실한 내용이길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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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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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열 장 정도는 "이게 뭔 말이래" 하며 읽었고, 그 다음 상당 부분은 비교적 수월하게 스토리를 따라서, 마지막 1/5 정도는 다시 "이건 또 뭔 소리래" 하며 읽은 듯하다. 독일의 천재 시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최고의 걸작, 인간 한계의 극복과 구원의 문제를 다뤘다는 이 소설이, 고백하건대, 내겐 너무 어려웠다. 누구나 읽지는 않았을 테지만 누구나 들어본 적은 있을 고전, 그것이 '어렵다'고 고백하기엔 솔직히 적잖이 부끄럽다. 다들 그럴싸하게 읽어냈는데 이 나이에 나만 쉽게 이해 못하는 걸까봐.

 

물론 대략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초반에는 표현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중간부터 후반까지는 그리스 신화와 너무 많이 섞여 있었다는 데 거의 난독증 가까운 어려움을 느꼈다. 그리스 신화라고는 거의거의, 정말 기본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지라 인물 하나를 이해하는 데도 주석은 필수였다. 주석 찾느라 책을 앞뒤로 계속 뒤적였으니 글 읽는 흐름은 더욱 뒤쳐졌을 테고.

 

사실 자존심 때문에라도 이 책을 몇 번이고 더 읽어 이해해내고야 말겠다, 고 결심하고 싶지만, 그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았어 ㅜㅜ. 재미있었던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읽어냈다고 하는 게 더 맞을걸.

 

시간이 1년이든, 2년이든, 더 오래든 지난 후에라면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듯하다만.

그래, 나 무식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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