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을꽃 ㅣ 엔시 씨와 나 시리즈 3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1. 이상하게도 기억나는 학창시절이라하면 고등학교때가 가장 선명합니다.. 중학교때의 이미지도 머리속에 많이 남아있긴한데 모든 학창시절의 중심은 고등학교 3년인 것 같아요, 그 뒤의 대학교 시절의 이미지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옅어져만 가는데 희한하게도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들은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아마 여지껏 변함없이 만나고 허물없이 욕을 해대는 친구들이 그때 그친구들이기에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늘 똑같은 시절의 똑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그때에 치기어린 행동들에 대해 웃으면 이야기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행복속의기억입니다만 다들 나와 같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한번씩 많은 동기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때면 그때 그시절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없던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상처로 자리잡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잊혀져가긴 하지만 그당시 아무렇게나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던 끼리들의 배타적 행동들이 뒤늦게 상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지요, 물론 아직까진 그런 기억으로 인해 누군가가 오랫동안 그 상처가 덧난 경우는 없는 듯 하니 다행이기는 한데, 끼리들의 치기어른 행동들로 인해 누군가가 외로움을 당한 사실을 뒤늦게 안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조금 부끄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정시에 입학한 저로서는 굳이 학교를 다시 방문할 일이 없었지만 재수를 하는 친구들과 1년 후 학교를 방문했을때에는 참 많은 생각을 하던 기억이 오롯이 떠오릅니다.. 일년이 지난 시점에 학교의 교정에 앉아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보낸 3년의 시간을 간직한 이 공간이 1년만에 이렇게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나중에 나이가 들어 이 학교를 올 일이 있어면 얼마나 이 시절을 떠올리게 될까, 그때까지 학교는 변함이 없을까, 변함이 없었습니다.. 수십년이 지나 우연히 들른 학교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더군요, 교정의 한쪽을 차지하던 살구나무는 여전히 든든히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몇몇 건물이 다시금 들어서긴 했지만 그시절 그때 울타리 건너의 개구멍이 있던 담장 근처에서 숨어서 태우던 담배꽁초의 연기가 아직도 제 콧구녕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그시절의 기억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 듯 합니다..
2. 딸아이가 초딩때부터 붙어다니던 친구가 여름방학동안 아주 멀리 이사를 가면서 전학을 했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친구였는데 부모로서 걱정이 많았죠, 사실 방학동안 그 친구가 이사간 곳으로 딸아이와 함께 가족들이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자동차로도 3시간이 훨씬 넘는 곳을 방문하면서도 걱정은 유일한 친구처럼 보이던 아이를 떠나보낸 딸이 많이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구요, 그렇게 생각하고 부모로서 침울하고 외로움을 더 타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부모는 자식을 제대로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호들갑이었죠,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달라져서 떨어져도 떨어진 것이 아닌 것 같은 세상이었고 무엇보다 그동안 몰랐던 친구가 새롭게 등장하더라구요, 새로운 친구가 놀러와서 너무 친하게 딸과 어울리는 모습에 그동안 걱정하고 고민했던 호들갑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더라구요, 중학생이 된 후로 이젠 아이가 아님에도 여전히 제 눈엔 아이로 보고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과 소통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과 같은 아주 무서운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중학생들의 행동을 보면 또 부모로서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이제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이지만 여전히 보호받아야하는 존재들이기에 부모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또 그들만의 세상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이 내재들어 성장해가는 지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눈치를 채고 살아가야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딜레마가 있는 것이지요, 뭐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가슴이 너무 아픈 작품을 읽다보니 저의 학창시절과 딸아이의 현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되네요, 얼마전에 무척 행복하게 읽었던 기타무라 가오루 작가의 "밤의 매미"에 이은 장편소설 "가을꽃"입니다.. 일상 미스터리적 형식을 취한 소소한 삶의 이면을 다루고 있죠, 하지만 이번에는 상당히 무게감이 나가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사람이 죽습니다..
3. 마침 우리네 계절 감성과 딱 맞아 떨어지는 시간적 배경입니다.. 가을이 짙어가는 시점에 대학교 3학년을 무난하게 넘기고 있는 '나'에게 찾아온 여고 후배의 죽음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쇼코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얼마전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죽음을 당한 쓰다라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죠, 과거 같은 동네에 살던 쓰다와 이즈미는 '나'와 함께 초등학교에 통학을 했습니다.. 나와는 3년 차이가 나지만 같은 동네다 보니 아이들이 나름 의지하는 선배정도 되었던 모냥입니다.. 그렇게 지내온 이즈미와 쓰다는 초중고를 함께 다니며 떨어질 수 없는 친구사이가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학교 축제를 위해 학생회 활동을 하던 중 밤 늦은 시간에 홀로 학교 옥상에 올라간 쓰다가 떨어져버린 것이죠, 옥상문을 바깥쪽에서 잠겨 있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구조임에도 어떻게 올라갔는 지, 그리고 자살과는 전혀 무관한 대단히 재능이 뛰어난 긍정적인 아이인 쓰다가 어떠한 이유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인 지 모두들 당황해하게 되죠, 무엇보다 그런 쓰다의 죽음을 바로 겪었던 이즈미의 고통은 말 할 수도 없이 괴로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쇼코와 함께 있던 날 '나'의 집으로 과거 쓰다가 쓴듯한 교과서의 한쪽을 복사한 문서가 전달됩니다.. 정치경제를 다룬 책의 복사본은 애덤 스미스에 대한 내용중의 일부로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문장에 덧칠된 미스터리한 단서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정황으로 봐서는 이즈미가 보낸 듯한데,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힘든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즈미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그 교과서가 쓰다의 다른 유품들과 함께 태워져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누가 보냈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홀로 남겨진 이즈미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의지했던 한명의 죽음이 남겨둔 고통을 이즈미는 어떻게 감당할까요, 잔잔하지만 이런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주변사람들의 삶과 함께 '나'는 주어진 미스터리의 단서를 찾아나가고자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후반부에는 라쿠고가 장인인 엔시 다이노스팬이신 엔시 씨가 등장하면서 사건의 미로에 빠진 사건의 정황을 잘 풀어주지 싶습니다..
4. 그렇죠, 이 작품은 일명 '엔시 씨와 나"라는 시리즈로 불리우는 작품입니다.. 국내에는 이번 장편 "가을꽃"을 비롯해 전작들 단편집 두권인 " 하늘을 나는 말"과 "밤의 매미"가 출간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여느 미스터리소설들과는 조금 다른 감성적 느낌이 전반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일상 미스터리라는 설정으로 주인공인 '나'의 생활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삶의 이면을 다루고 있죠, 전작들은 말그대로 사소한 미스터리의 생활적 측면에서 드러나는 잔잔한 감동적 반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극적이지도 그렇다고 대단히 드라마틱한 구성도 없지만 작품이 주는 독특한 대중적 공감은 상당히 오랫동안 머리와 가슴에 남게 만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단편집인 "밤의 매미를 읽었지만 상당히 행복한 감성적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는 장편으로 하나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진지하고 조금은 무거운 삶의 아픔을 다루고 있죠, 죽은 이의 미스터리에 집중하기보다는 남겨진 이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에 우린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을만큼 성숙하지 못했지만 조만간 그들만의 자신감으로 성인이 될 수도 있었던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우린 보게 됩니다.. 이젠 조금은 자신의 삶을 그려낼 수 있는 '나'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대중들은 들여다보게 되죠,
5. 이야기는 무리없이 남겨진 단서를 중심으로 주변의 상황과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이야기의 틈을 조금씩 메꿔가면서 진행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이즈미라는 아이가 감당해야하는 상실감을 대단히 구체적으로 보여주죠, 작가는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나'의 시선으로 주변에서 벌어지고 엮어지는 생활의 모습속에서, 기억속에서 조금씩 진실이 뭔지 되짚어나가고자 합니다.. 이 소설속에서는 우리의 일반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냥 우리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어느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툭 튀어나와버리는 아픔을 단조롭지만 가슴시리도록 그려내고 있는 것이죠, 아직 미래의 삶의 모든 것을 가늠하지 못하고 만들어나가려 노력하는 한 아이의 죽음을 다룬 설정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지지만 작가는 변함없이 주변의 이야기와 따뜻한 인간들의 배려적 감성을 곳곳에 배치하여 편안함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이의 죽음을 감내하기도 힘든 어머니에게 남겨진 아이의 아픔과 고통을 다독거리고 걱정하는 인간적 따스함도 보여줍니다.. 살아남았으니 어떻해서든 우린 견뎌내어야한다는 이야기이죠, 그리고 '나'에게 주어졌던 단서의 미스터리를 정리하면서 엔시 씨와 주고받는 문답의 결론적 마무리는 그리고 그 해결적 방식은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감동이었습니다.. 작위적이고 꾸며낸 소설적 감성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삶과 직면한 현실적 인간의 모습으로 이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 잠들었어요" 이 한마디가 주는 감성은 이 작품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6. 전작인 "밤의 매미"를 읽으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긴한데, 저같은 장르소설 취향의 속도감 넘치고 자극적이고 조금은 과장된 폭력적 감성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스릴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어떻게보면 이런 소소한 일상 미스터리를 다룬 잔잔한 작품은 재미적인 측면에서 크게 어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 작품만은 조금 달리 보고 싶습니다.. 단순한 코지스타일의 추리소설의 측면이 아니라 감성적인 느낌이 더 강하게 자리잡는 편안하면서도 감동이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것이지요, 저 역시 중간중간 이어지는 주변의 이야기의 몇갈래의 가지들은 쳐내고 싶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작가가 그려내기 위해 설정한 삶의 모습은 상당히 중요해 보였습니다.. 단지 라쿠고가라는 장르를 캐릭터에 부여한 상황적 의도와 일본의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저에게 뭐랄까요, 그들의 생활의 공감을 전적으로 얻어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없진 않았습니다만 그렇다고 일일이 주석이나 해설을 달았다가는 흐름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야될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보다 이 작품의 인간미와 작가가 그려내는 소소한 일상의 감성들이 주는 감동이 너무나 좋아서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럼 좋은 느낌으로 한 곡조,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디엔가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 땡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