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이상 비대와 그로부터 야기되는 일련의 재난을 '비가역적인' 것으로 선언하는 것은 역사적 결정론의 한 형태로 의심받아 마땅하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인간 활동의 산물인 사회적 과정들을 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비가역성'이라는 사고가 번번이 '리얼리즘'에 호소한다는 이유로 이를 기존 질서('사물의 자연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입장과 동일시한다. 또 어떤 다른 이들은 '비가역성'이란 사고를 기존의 경제적 정치적 관계들로부터의 분명한 출구나 대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로부터의 자신의 해방이 용이하지 않을 때 이 관계들에 대한 체념적 복종으로 해석한다.
금융 영역에서 '비가역성'이라는사고는 무식의 소치이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의 금융사를 일별하는 것으로 족하다.

- 프랑수아 셰네 엮음, 서익진 옮김, <금융의 세계화>, 한울, 2002, 39쪽

"금융시장의 지배 과정은 전복될 수 있으며 또 전복되어야 한다." 부아예와 드라슈가 사용한 이 엄중한 표현은 오늘날에는 거의 듣기 힘들기 때문에 여기서 강조해둘 만하다. 그것은 이 책의 다른 논자들도 공유하는 확신이며,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확실성에 대해서 그리고 이것이 경제, 사회 및 정치 영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전에 경제적으로 결정된 운명도, 사회관계의 변경과 무관하지 않은 다소 극적인 교정 정책에 의해서 해결될 수 없는 상황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위의 책, 40쪽

자연 일반의 질서는 기본적으로 '비가역성'을 특징으로 하는 엔트로피 법칙이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진화는 복잡성이 증가하는 것이지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사회의 역사도 지질학적 시간대 속에서는 극히 짧은 순간을 차지할 뿐이지만, 이러한 복잡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즉, 네겐트로피적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성의 증가는 어떤 방향을 미리 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가역성'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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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박철현 옮김 / 이제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세계적인 성서학자이자 신약성경의 역사, 초기 기독교 교회사, 성경 사본학의 거장으로 알려진 바트 어만. 그가 쓴 이 책은 역시 그가 쓴 <성경 왜곡의 역사>의 자매서라 할 수 있다.

후자의 책이 오늘날 정경으로 확립된 27권의 (신약)성경의 위조, 왜곡을 포함한 변개의 역사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책이라면, 이 책은 20세기 중반에 발굴된 나그함마디 문서 등의 다양한 외경서까지 꼼꼼하게 살피면서 초기 기독교의 다양성을 폭넓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오늘날 정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독교가 어떻게 다양한 기독교들과 겨뤘으며, 어떻게 승리하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초기의 다양한 기독교들과 관련해서 저자는 에비온파와 마르시온파, 영지주의파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결과적으로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특정한 한 경향이었던 원정통 기독교가 살아남게 되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잊혀지게 되었지만, 당시의 논의들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는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단과 정통 시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는 또한 관용과 배타성의 문제도 제기한다.

“오늘날 기독교의 다양한 형태는 초기 기독교계 내부에서 일어난 싸움에서 승리한 한 형태의 기독교에서 나왔다. 전투에서 승리한 기독교인들은 정통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교리와 신앙에 대한 결정권을 틀어쥐었는가 하면 당시에 유행한 모든 기독교 텍스트들을 정경서와 이단서로 갈라놓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최후의 일격으로 논쟁으로 얼룩진 기독교의 역사를 자신들의 입장에서 다시 기술했다. 그들은 그러한 전투가 마치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꾸미고, 자신들의 견해가 예수와 그의 제가가 살았던 당시부터 줄곧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견해는 항상 정통, 즉 바른 믿음이 되었고, 다른 경전을 받든 그들의 반대자들의 견해는 언제나 사람들을 속임수로 꿰는 이단으로 치부되었다.”(위의 책, 27~28쪽)

승자와 패자가 갈린 초기 기독교들 사이의 싸움에서 원정통 기독교인들은 다양한 수단들을 동원했다. 신학적 혹은 비신학적 이유로 스스로 정합성을 갖추기 위한 위조와 변조는 다반사였으며, 이단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위조행위가 빈번히 일어났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끌어들이며 윤리적 공격과 인신 공격성 비난도 일삼았다.

그러나 기독교들 사이의 내적 긴장과 경쟁은 아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원정통 기독교 내부로 흡수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원정통 기독교는 여러 가지 독특한 사상이 혼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원정통은 마르시온파에 반대하고 에비온파에 동조하여 유대 경전들의 권위를 인정한 반면, 에비온파에 반대하고 마르시온파에 동조하여 역사적 유대교에 반대했다. 그들은 에비온파에 반대하고 마르시온파에 동조하여 예수의 신성을 인정한 반면, 마르시온파에 반대하고 에비온파에 동조하여 그의 인격성을 인정했다. 그들은 마르시온파와 영지주의파에 반대해서 유일하신 참하나님이 이 세계의 창조자라고 주장한 반면, 마르시온파와 영지주의파에 동조해서 이 세계를 무가치하게 보고 고행적인 수행을 통해 물질세계라는 덫에서 벗어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위의 책, 524쪽)

오늘날 기독교가 갖고 있는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인정한 최초의 인물은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아타나시우스였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의 저술이 나온 후 300년도 더 지난 서기 367년 아타나시우스가 쓴 편지에 나온다. 300여년이 흐르는 동안 일어난 일들과 관련해서는 <성경 왜곡의 역사>에 상세히 잘 나와 있다.

“기독교의 배타성은 그 당시 지배적인 로마시대 사조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로마 제국의 다신론적 종교들은 제각기 다른 종교들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종교들 중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종교가 옳고 그 외의 다른 종교들은 삿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527쪽)

다른 종교들과 달리 기독교는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로 하여금 개종하기 전에 가졌던 모든 종교적 관습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기독교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것과 경쟁 관계에 놓여 있던 종교들을 괴멸시켰던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전대미문의 배타적인 태도 탓에 기독교가 성공적으로 전파될 수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계속 용인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그 답은 일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나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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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종교들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유대교와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을 숭배하는 것은 신에 대한 교리를 받아들이거나 창안하는 행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신들의 진정한 성격과 그들과 세상의 관계와 관련해서 선언해야 할 신조를 창안하는 경우도 없었다. 예배의식을 거행하는 동안 낭송해야 할 교리적으로 잘 다듬어진 신앙고백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정통(바른 교리)과 이단(삿된 교리)의 구별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가 출현했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움직임이 일자 새로운 요소들이 고대의 종교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자신만이 옳고 다른 종교들은 그르다고 주장하는 배타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일부 초기 기독교 저술들 속에서 천명하고 있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에 인간의 구세주로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라든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무를지니라."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예수가 직접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라갈 자가 없느니라."라는 말에서도 기독교의 배타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 바트 D. 어만 지음, 박철현 옮김,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이제, 2008, 202~203쪽.

인용문이 있는 이 책의 원제는 'LOst Christianities'다. 직역을 하자면, '잃어버린' 혹은 '잊혀진' 기독교들 정도가 되겠다. 기독교가 아니고 기독교들이라니? 왜냐하면 오늘날의 기독교가 최소한 공유하는 것과 달리 초기에는 이와 전혀 다른 다양한 교리와 주장을 지닌 기독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독교를 정통이라고 칭한다면, 기독교 형성 초기에는 크게 보아 이 흐름을 잇는 원정통 기독교뿐만 아니라, 유대적 기독교인 에비온파, 반유대적 기독교인 마르시온파, 그리고 영지주의 등이 서로 경합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쟁에서 승리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정통 기독교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기독교의 배타성은 이들 초기 기독교들 또한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때로는 추잡하기까지 한 경쟁과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패자들은 역사의 무덤 속으로 들어갔고, 후대에 옛 흔적들이 조금이나마 발견되면서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초기 기독교의 배타성과 관련해서는 약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영지주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영지주의의 특성에 내재한 요소 때문일 수도 있고, 이교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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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왜곡의 역사 -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민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한글판 제목이 원제('Misquoting Jesus')와 달리 조금 자극적으로 뽑힌데다, 표지도 뭐랄까 너무 촌티가 나는 것 같아 겉만 봐서는 책에 몰입하기가 무척 망설여지는 그런 책이다.

물론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 30여년간의 연구 결과를 매우 대중적으로 풀어낸 저자의 역작이다. 번역도 비교적 매끄러워 술술 읽히는 책이다.

문자주의 기독교인들, 성경무오류설에 집착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책일 터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나 비기독교인들에게는 성경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돕는 매우 유익한 책이다.

이 책은 또한 본문비평학을 통해 성경에 대한 연구를 거듭할수록 성경 해석에 대한 저자의 입장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나아가 저자의 기독교적 세계관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성경 해석을 바트 어만 개인의 생각으로만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저자는 본문비평학이라는 학문 세계에서 다양한 견해들이 공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부분도 많다고 설명한다.

설령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자체가 바로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나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견고한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기존의 완고한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 성경에 부분적인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성경을 관통하는 신학적 진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견해 또한 이 책에서 통렬히 논박당한다. 신약의 4대 복음서만 잘 훑어보아도 각각의 복음서가 서로 다른 신학적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성경 변개의 무수한 역사 속에는 신학적 입장의 차이뿐만 아니라 역사, 사회, 문화적 차이까지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러한 의도적인 성경 변개는 바로 성경 해석의 차이를 불러온다. 물론 그 차이는 매우 중대한 것에서부터 사소한 것까지 골고루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경 해석의 문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성경 해석은 항상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읽는 사람이 있는 한. 그리고 해석은 항상 독자의 시각에 의존한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 사물 그 자체를 온전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란 기관을 통해 보며, 때로는 보고 싶은 것만 보듯이 말이다.

성경 또한 인간의 만들어낸 역사적 창작물에 불과하다. 어떤 이는 '인간의 옷을 입은 성서'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성경 해석을 둘러싼 다양한 견해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성경 그 자체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것이 온전히 보존되어야 할 것이었다면 무수한 성경 변개의 역사는 일어날 수 없는, 그리고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분명히 일어났다. 한 두 번도 아니고 무수히 많이. 저자는 이 가운데 핵심적인 것들만 추려서 선보인다. 이것만으로도 성경을 더이상 무오류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없게 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메시지는 매우 간결하다. '성경도 의심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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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神話다 - 기독교 탄생의 역사를 새로 쓰는 충격보고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티모시 크리프와 피터 갠디의 <예수는 신화다>에서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의 뿌리가 낱낱이 파헤쳐졌다.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의 성립 과정에서 나타난 반문명성은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어떤 본질적인 변화가 없는 한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인류사의 커다란 비극이다.

물론 이 두 저자의 주장은 아직까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많은 문헌학적 고증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통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역사를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 매우 설득력 있는 가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통 그리스도교인들의 맹목적 믿음을 논외로 한다면 이를 뛰어넘는 가설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교도 신앙과 영지주의 그리스도교는 신화 혹은 신화적 비유에 기초했기 때문에 매우 관용적이었으며 개방적이었다. 서로 다른 신화에 기초했다고 해서 서로를 배척하거나 대립하지 않았다. 영적인 깨달음과 내용이 중요했지 문자 그대로의 형식이나 표현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자주의 그리스도교는 예수 이야기를 신화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는 편협성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동정녀로부터 태어나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 육신이 부활했다는 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이해하는 순간 이를 부인하거나 인정치 아니하는 다른 종교는 모조리 반역사적인 종교로 그리스도교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하나님과 예수를 믿지 않은 모든 사람은 영원한 저주, 지옥의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예정되어 있다면,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자신의 믿음을 전파할 도덕적 의무를 지니게 된다.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선교에 나서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자신만이 옳다는 편협한 신념 때문에 헛된 죽음을 한 사람들은 순교자로 추앙받았고, 이는 또 다른 순교자를 낳았다.

영지주의의 스승임이 분명했던 바울은 훗날 반영지주의자이자 문자주의자로 날조되었고, 콘스탄티누스는 당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만들었다. 4세기 전반 이에 힘입은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의 승리는 더욱 참혹한 비극을 불러왔다. 스스로가 승리자가 되고 정통이 되는 순간 패배자와 이단으로 내몰린 집단은 박해를 받는 운명에 처했고, 이들의 비옥한 토양이 되었던 고대의 문화 또한 함께 말살되었다.

“BC 1세기에 포시도니우스는 행성들의 궤도를 충실하게 반영한 태양계의 아름다운 공전 모형을 만들었다 AD 4세기 말경에는, 하나님이 매일 밤마다 하늘에 별을 설치한다는 것을 믿지 안흔 것은 싱성 모독으로 간주되었다. BC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불과 몇 퍼센트의 오차 이내에서 지구의 둘레를 정확히 추산해 냈다. 그러나 AD 4세기 말경에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이단자로 몰렸다.
우리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교 신앙이 그토록 원시적인 반면, 문자주의의 그리스도교가 유일하게 참된 종교라면, 왜 이교 신앙은 그토록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고, 왜 참 종교는 그토록 몽매한 1천년의 암흑시대를 불러왔는가?”(위의 책,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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