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神話다 - 기독교 탄생의 역사를 새로 쓰는 충격보고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티모시 크리프와 피터 갠디의 <예수는 신화다>에서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의 뿌리가 낱낱이 파헤쳐졌다.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의 성립 과정에서 나타난 반문명성은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어떤 본질적인 변화가 없는 한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인류사의 커다란 비극이다.

물론 이 두 저자의 주장은 아직까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많은 문헌학적 고증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통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역사를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 매우 설득력 있는 가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통 그리스도교인들의 맹목적 믿음을 논외로 한다면 이를 뛰어넘는 가설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교도 신앙과 영지주의 그리스도교는 신화 혹은 신화적 비유에 기초했기 때문에 매우 관용적이었으며 개방적이었다. 서로 다른 신화에 기초했다고 해서 서로를 배척하거나 대립하지 않았다. 영적인 깨달음과 내용이 중요했지 문자 그대로의 형식이나 표현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자주의 그리스도교는 예수 이야기를 신화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는 편협성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동정녀로부터 태어나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 육신이 부활했다는 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이해하는 순간 이를 부인하거나 인정치 아니하는 다른 종교는 모조리 반역사적인 종교로 그리스도교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하나님과 예수를 믿지 않은 모든 사람은 영원한 저주, 지옥의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예정되어 있다면,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자신의 믿음을 전파할 도덕적 의무를 지니게 된다.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선교에 나서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자신만이 옳다는 편협한 신념 때문에 헛된 죽음을 한 사람들은 순교자로 추앙받았고, 이는 또 다른 순교자를 낳았다.

영지주의의 스승임이 분명했던 바울은 훗날 반영지주의자이자 문자주의자로 날조되었고, 콘스탄티누스는 당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만들었다. 4세기 전반 이에 힘입은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의 승리는 더욱 참혹한 비극을 불러왔다. 스스로가 승리자가 되고 정통이 되는 순간 패배자와 이단으로 내몰린 집단은 박해를 받는 운명에 처했고, 이들의 비옥한 토양이 되었던 고대의 문화 또한 함께 말살되었다.

“BC 1세기에 포시도니우스는 행성들의 궤도를 충실하게 반영한 태양계의 아름다운 공전 모형을 만들었다 AD 4세기 말경에는, 하나님이 매일 밤마다 하늘에 별을 설치한다는 것을 믿지 안흔 것은 싱성 모독으로 간주되었다. BC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불과 몇 퍼센트의 오차 이내에서 지구의 둘레를 정확히 추산해 냈다. 그러나 AD 4세기 말경에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이단자로 몰렸다.
우리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교 신앙이 그토록 원시적인 반면, 문자주의의 그리스도교가 유일하게 참된 종교라면, 왜 이교 신앙은 그토록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고, 왜 참 종교는 그토록 몽매한 1천년의 암흑시대를 불러왔는가?”(위의 책,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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