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종교들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유대교와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을 숭배하는 것은 신에 대한 교리를 받아들이거나 창안하는 행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신들의 진정한 성격과 그들과 세상의 관계와 관련해서 선언해야 할 신조를 창안하는 경우도 없었다. 예배의식을 거행하는 동안 낭송해야 할 교리적으로 잘 다듬어진 신앙고백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정통(바른 교리)과 이단(삿된 교리)의 구별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가 출현했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움직임이 일자 새로운 요소들이 고대의 종교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자신만이 옳고 다른 종교들은 그르다고 주장하는 배타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일부 초기 기독교 저술들 속에서 천명하고 있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에 인간의 구세주로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라든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무를지니라."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예수가 직접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라갈 자가 없느니라."라는 말에서도 기독교의 배타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 바트 D. 어만 지음, 박철현 옮김,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이제, 2008, 202~203쪽.
인용문이 있는 이 책의 원제는 'LOst Christianities'다. 직역을 하자면, '잃어버린' 혹은 '잊혀진' 기독교들 정도가 되겠다. 기독교가 아니고 기독교들이라니? 왜냐하면 오늘날의 기독교가 최소한 공유하는 것과 달리 초기에는 이와 전혀 다른 다양한 교리와 주장을 지닌 기독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독교를 정통이라고 칭한다면, 기독교 형성 초기에는 크게 보아 이 흐름을 잇는 원정통 기독교뿐만 아니라, 유대적 기독교인 에비온파, 반유대적 기독교인 마르시온파, 그리고 영지주의 등이 서로 경합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쟁에서 승리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정통 기독교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기독교의 배타성은 이들 초기 기독교들 또한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때로는 추잡하기까지 한 경쟁과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패자들은 역사의 무덤 속으로 들어갔고, 후대에 옛 흔적들이 조금이나마 발견되면서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초기 기독교의 배타성과 관련해서는 약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영지주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영지주의의 특성에 내재한 요소 때문일 수도 있고, 이교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