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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오디세이 - 변화하는 세상에서 길을 찾는 64괘의 통찰
박재희 지음 / 김영사 / 2026년 10월
평점 :

1
27년 동안 여덟 번 회사를 옮겼습니다. 돌아보면 매번 가장 어려웠던 건 <어디로 갈 것인가>보다 <언제 움직일 것인가>였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야 하는지, 지금 떠나야 하는지. 그 판단 하나에 이후 몇 년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 책 첫 괘의 제목을 보는 순간 한참을 멈춰 있었습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2
이번에 읽은 책은 <주역 오디세이>입니다.
동양철학을 대중에게 쉽게 풀어온 박재희 교수가 40여 년의 연구와 강독을 바탕으로 『주역』 64괘와 384효를 완역하고 해설한 책입니다. 『논어』, 『도덕경』에 이은 1일 1강 동양 고전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라고 하네요.
주역이라고 하면 점을 치는 책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저자는 주역이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매트릭스>라고 말합니다. 64괘를 혼돈, 화합, 회복, 희망 같은 여덟 장으로 묶어 인생 이야기처럼 읽히게 한 구성은 이 책만의 장점입니다.
다만 솔직히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568쪽에 이르는 분량에 괘 이름과 한자 원문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주역을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앞부분에서 속도가 꽤 더딜 수 있습니다. 동전을 던져 괘를 얻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읽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점보다는 해설 쪽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3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 위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A. 첫 괘 건괘의 여섯 마리 용은 인생의 단계다. 때를 기다리는 잠룡부터 정점에서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하는 항룡까지, 지금 내가 어떤 용을 타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B. 혼돈은 실패가 아니라 준비다. 불안한 시기에 가장 많은 가능성이 태어난다.
C. 때로는 기다림도 능력이다.
D. 이길 싸움도 하지 않는 게 낫다.
E.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공 이후의 태도다.
F. 몰락을 뜻하는 박괘 바로 다음에 회복의 복괘가 온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새 기운이 싹튼다.
G. 주역의 마지막 괘는 완성이 아니라 <미완성>이다. 완성은 정지이고, 미완성이 새로운 시작이다.
이 중에서 가장 와닿았던 건 D와 A였습니다.
D를 읽으며 회사를 대표해 오랫동안 소송을 진행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이기든 지든 시간과 비용, 그리고 사람의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되었습니다. 3,000년 전 고전이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A는 제 직장생활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여덟 번의 이직 중에는 잠룡처럼 기다려야 할 때 서둘렀던 적도 있고, 비룡처럼 날아올라야 할 때 망설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4
개인적으로 오래 머문 괘가 하나 더 있습니다. 56괘 여괘, <낯선 곳에서 나를 지키는 법>입니다.
베트남 법인장으로 지내던 시절, 저는 말 그대로 나그네였습니다. 한국에서 통하던 방식이 그곳에서는 통하지 않았고, 매일 나를 낮추면서도 중심은 잃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때 이 괘를 알았다면 조금 덜 흔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 역시 코로나로 모든 강의가 멈췄을 때 <물러날 때를 알라>는 돈괘를 얻고, 강원도 홍천에 학당을 세워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멈춤이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였던 셈입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기보다, 고민이 생길 때마다 한 괘씩 펼쳐 보는 방식이 더 잘 어울립니다. 동양 고전에 관심이 있으신 분, 그리고 인생의 갈림길에서 <때>를 고민하고 계신 분이라면 관심 가지실 만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