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 온다 창비교육 성장소설 10
이지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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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 <완벽이 온다>, 이 책은 그룹홈에서 독립한 세 명의 여성이 자립하고 연대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는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그룹홈에서 함께 자란 민서와 해서 그리고 솔, 자신만의 '완벽'을 찾으려 애쓰는 그녀들의 이야기 <완벽이 온다>, 그녀들이 꿈꾸던 '완벽'은 어쩌면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올 아기 '완벽'이로 인해 한층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너희 아버지 돌아가셨대. 지금 부산에서 장례 치르고 있다더라. 선생님도 급하게 연락받느라 경황이 없어서...... 내일이 입관이래. 갈 거면 주소 알려 주고. p.10

 

6살 때 그룹홈에 입소한 민서, 18세가 되면 무조건 시설에서 나가야 하는 규정에 따라 독립한 민서는 한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사회복지사에게서 아버지 장례식 소식을 듣습니다. 2살까지는 엄마도 함께 살았으며, 그 후 아빠와 6살 때까지 살았던 민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빠가 친권을 포기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그룹홈에 입소하게 되었는데요. 지인 자격으로 장례식에 잠깐 들른 민서는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자신이 죽으면 누가 찾아올까요?

 

"아빠는 술만 먹으면 할머니를 때렸어. 나는 그날 정말 할머니가 죽는 줄 알았어."

 

솔 언니는 그래서 설 언니가 아빠를 신고했다고 했다.

"우리는 맞지도 않았는데 아동 학대래. 그래서 쉼터에 가게 됐어.

p.43

 

민서보다 먼저 입소한 솔과 설 자매는 아동학대로 그룹홈에 입소했지만, 민서와 달리 돌아갈 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집에 가서 자고 오기도 했는데요. 아빠가 금주 금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며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만류에도 아빠를 따라 집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민서가 솔을 다시 만났을 때, 아빠는 감옥에 갔으며 할머니는 치매가 와서 요양원으로 가셨다는 것 그리고 설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동안 술을 마신 아빠가 폭력을 휘두를 때마다 신고를 했던 설, 또다시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린 아빠 때문에 죽고 만 설, 솔은 자신이 그때 집 밖에 있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빨리 갔더라면 설 언니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 후회하며 스스로 자신을 해합니다.

 

민해서는 그룹홈을 나간 지 삼 개월 만에 김해서가 되어 돌아왔다. 해서 언니의 친아빠는 민씨였는데 새아빠가 김씨여서 성이 바뀌었다고 했다. p.47

 

해서 역시 설과 솔 자매처럼 돌아갈 집이 있었기에 크리스마스나 명절 그리고 생일에는 집에 갔습니다. 하지만 성이 바뀐 이후 더 이상 엄마가 자신을 집에 데려 갈 거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소원이었던 해서, 임신 중인 해서는 너무나 당연한 듯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기 아빠가 갑자기 연락을 끊고 사라졌습니다. 자기 엄마처럼 살기 싫었던 해서, 결혼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아기를 낳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해서 언니의 말이 나에게도 묘한 울림을 주었다. 애한테 안 된다고 하려면 엄마도 안 본다니. 해서 언니가 정말 엄마 같아 보이면서도, 그런 존재가 있는 완벽이가 부러웠다. p.202

 

예정일이 한참이나 지나 태어난 아기 완벽, 아직은 완벽이를 안는 것조차 어설픈 해서, 그리고 해서네 집에서 함께 살게 된 민서와 솔, 그들은 엄마, 아빠,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 우리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가족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을지라도,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가족이 됩니다. 민서에게 해서와 솔이 있어서, 솔에게 민서와 해서가 있어서, 해서에게 민서와 솔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무엇보다 그녀들에겐 그 누구보다 사랑을 듬뿍 받을 완벽이가 있습니다. 꿈오리 한줄평은 작가님의 글로 대신합니다.

 

삶의 어느 순간에서 누구나 민서가 될 수 있고 민서에게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민서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고 살아가기를,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나기를 소망한다.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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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
이소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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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은 추한 것은 지우게 되어 있다.

삶은 나에게 항상 미소짓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삶에 미소지었다.

-라울 뒤피 p.15

 

화가, 삽화가, 장식 미술가, 도예가, 의상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통합 예술가 라울 뒤피,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통합 예술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한 라울 뒤피의 삶과 작품에 대한 모든 것을 들려줍니다. 미술 작품에 정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꿈오리는 그의 작품 전시에 대한 광고를 본 후 알게 되었는데요. 이 책은 그가 얼마나 멋진 작가인지를 알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 듯합니다. 그는 "생의 대부분을 경쾌하고, 아름답고, 밝고, 긍정적인 작품들 위주로 남긴 것으로 평가받으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뒤피를 '기쁨의 화가', '찬란한 색채의 화가' 등의 별명으로 부른다."고 하는데요. 추한 것은 지우고, 언제나 삶에 미소지었다는 말 그대로 작품에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이 책은 1'르아브르', 2'야수파', 3'뒤피의 친구들', 4'장식 예술', 5'마담 뒤피', 6'뒤피 스타일'까지 뒤피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으며, 부록으로 라울 뒤피의 작품 소장처에 대한 정보까지 실려 있습니다. "라울 뒤피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그가 가진 예술과 삶에 대한 철학을 사람들에게 전하는(p.19)"이야기, 제목 그대로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를 자유로이 넘나들었지만 그 어느 화파에도 속하지 않고, 속할 수 없는 경계를 넘어다녔던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삽화가, 직물 디자이너, 패턴 디자이너, 벽화가, 도예가 등으로 활동하며 모든 창작물에 자신의 다양한 정신을 담은(p.19)" 화가, 책을 읽고 나면 저자의 말처럼 "그는 미술사에서 가장 과소 평가받는 화가 중 한 명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르아브르에서 태어난 뒤피는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시절을 지나 그의 평생에 걸쳐 르아브로 풍경을 넓게, 그리고 깊게 그렸다. p.44

 

르아브르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라울 뒤피, 뒤피와 형제들이 음악가가 되고 화가가 된 것은 뒤피의 부모가 넉넉치 않은 살림에도 자녀들이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키웠기 때문인 듯합니다. 뒤피의 고향이자 일터였던 르아브로의 바다, 그 바다는 죽을 때까지 영감을 주었으며,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고 합니다. 클로드 모네가 '인상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계기가 된 <인상, 해돋이>의 배경이 르아브르라고 하니, 뒤피의 작품과 비교해서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인상파가 빛의 움직임으로 미술에서 혁명을 보여줬다면 야수파는 색으로, 입체파는 형태로 혁명을 전개했다. 뒤피는 이 세 가지 화파들을 자신의 내면에 넣고 평생을 자유자재로 그때그때 회화의 무기로 변형해 구사했다. 하지만 뒤피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투명성과 과정을 보여주는 선묘다. (중략) 색이 조금만 첨가되었을 뿐인데도 표현력이 풍부한 것이 뒤피 화풍의 장점이다.

p.229

 

"늘 변화를 추구해나간 화가, 힘든 현실 속에서도 낙관성을 잃지 않았던 화가,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예술에 있어서 아름다움에 관한 근원적인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화가", 라울 뒤피의 삶과 작품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만나길 바랍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의 삶에도 뤼피처럼 "희망과 행복, 낙관"을 담을 수 있기를 바라며, 꿈오리 한줄평은 책속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삶은 나에게 미소짓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삶에 미소지었다", "내 눈은 추한 것은 지우게 되어 있다"라는 문장을 곱씹어 보면 그가 죽는 날까지 그림에 고통과 슬픔보다는 희망과 행복, 낙관을 담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다. 뤼피의 삶과 작품을 보면 세상은 끝끝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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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전 시집 : 건축무한육면각체 - 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전 시집
이상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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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땐 시나 소설, 수필 등등 그 어느 작품이든 그저 시험공부를 위한 강제적인 읽기와 점수를 얻기 위한 강제적인 정답 찾기에만 몰두하여 글에 담긴 의미까지 달달 외우고는 했었습니다. 이상 시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시 <오감도><거울> 그리고 소설 <날개>인데요. 당연히 이 작품들도 자신만의 느낌과 감상이 아닌 시험공부용으로만 암기를 했었겠지요? 특히 <날개>는 가장 첫 문장과 가장 마지막 문장만 기억날 뿐, 어떤 내용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요. 아마도 그 당시 학생들에게 <날개>는 무척이나 파격적인 내용일 수도 있었기에, 전문을 수록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이상 시인의 시는 그때도 지금도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달 전인가 우연히 김상욱 교수님이 이상 시인을 괴물 시인으로 지칭하며 그의 시 <1933, 6, 1> <보통기념> <선에 관한각서1> <AU MAGASIN DE NOUVEAUTES> 등에 담긴 4차원의 개념, 상대성 이론, 행렬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듣고 나니 정말 "천재라는 수식어가 박제된 유일한 시인"이라는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축과 문학, 외국어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하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한 김해경, 그는 현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술사로 취직하여 근무했다고 하는데요. 그러한 연유로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는 전체주의와 군국주의를 매우 혐오한 사람이었으며, 그가 친일행위를 한 행적도 없으며, 단순히 생계를 위해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 시집은 <이상 전집> 2권을 초판본 순서 그대로 정리한 것이며, 기존의 초판본 시집의 느낌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게 현대어를 따랐다고 하는데요. <오감도>부터 '미발표 유고' 시까지 이상의 시 작품 전체를 담았으며, 대표 소설인 <날개>와 수필 <권태> <슬픈 이야기> <동경>을 부록의 형식으로 실었습니다.

 

이상의 작품들은 난해하고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생전에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 이상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감도> 역시 처음 조선중앙일보에 실렸을 때도 그 난해함과 추상성으로 인해 독자들의 거센 반발을 받았고 결국 15편을 끝으로 연재를 중단했다고 한다. p.6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로 시작되는 <시제1>부터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로 시작하는 <시제15>까지 <오감도>는 기본으로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는데다가 같은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나열되어 있어서 읽다보면 어느 부분을 읽고 있었는지 헷갈리기도 하고, <시제4>같은 경우에는 뒤집힌 숫자가 나열되어 있는데, 도대체 이 시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정말 너무나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듭니다. 여러 번 읽다보면 ''만의 느낌을 담은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오감도

1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건축무한육면각제' ~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 내게 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건축무한육면각체' ~

 

이 책의 서문에 "이상의 시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걸 핑계삼아 <오감도><거울>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 의미 해석 등은 슬쩍 생략하고 넘어가고, 많은 분들이 한번은 읽었거나 들었을 <날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중략)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힌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p.181~214

 

꿈오리에게 <날개>"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부터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까지라고 할 만큼 내용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작품입니다. 이번에 <날개>의 전문을 다 읽고 나니, 교과서에 모두 수록하기에는 조금 파격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속의 화자인 '' 는 매춘부 일을 하는 아내에게 기생하여 무료하게 살아가고 있는 남편인데요. ''와 아내의 관계는 일상적인 부부의 관계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한 번지에 18가구가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같고 아궁이 모양이 똑같은, 흡사 유곽같은" 33번지에 살고 있습니다. ''는 행복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불행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저 "그날그날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인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 살고 있는 방은 가운데 장지로 인해 두 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윗방인 ''의 방은 볕도 들지 않는 방입니다. ''는 아내가 외출하면 아내의 방인 '아랫방'으로 가서 돋보기로 불장난을 하기도 하고, 아내의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놀기도 합니다.

 

왜 아내의 내객들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이 풀 수 없는 의문인 것같이, 왜 아내는 내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도 역시 나에게는 똑같이 풀 수 없는 의문이었다. p.193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순 없으나, 아내는 외출도 할 뿐만 아니라 내객도 많습니다. 내객이 많은 날은 종일 볕도 들지 않는 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있어야만 하는데요. 그런 날 아내는 ''에게 오십 전짜리 은화를 줍니다. ''는 왜 아내가 자신에게 은화를 주는지, 내객들이 왜 아내에게 돈을 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돈을 쓸 일이 없는 ''는 아내가 준 돈을 넣어둔 저금통을 변소에 갖다 버리는데, 아내는 화를 내기는커녕 계속해서 은화를 머리맡에 두고 갑니다.

 

나는 아스피린으로 알고 그럼 한 달 동안을 두고 아달린을 먹어 온 것이다. 이것은 좀 너무 심하다. p.208

 

''에게 감기약이라며 건네 준 아스피린, 하지만 그것이 아스피린이 아닌 아달린(수면제)이라는 것을 알게 된 ''는 충격으로 집을 나가는데요. 아내와 아스피린 그리고 아달린에 대해 생각하던 ''는 가지고 나온 아달린 여섯 개를 모두 먹은 후 잠이 듭니다. 하루가 지난 후 깨어난 ''는 아내가 왜 자신에게 아달린을 먹였는지, 자신이 자는 동안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 하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 이야기는 미스꼬시 옥상에 올라간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라고 외쳐보고 싶었다며 끝이 납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에게 방은 어떤 의미일까요? ''의 외출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와 아내는 어떤 관계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는 외침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질문을 하고 나니, 괜스레 시험공부를 하던 그때처럼 정답에 근접한 답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과 더불어 문학 작품에 굳이 정답을 강요하는 공부는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 또한 듭니다. 꿈오리 한줄평은 책속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이상의 시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가 어려운 이유는 정답이 있다고 믿고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는데 찾으려고 하니 당연히 시를 읽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시의 답은 시인에게 있지 않고 독자에게 있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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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하는 철학자
헤르만 폰 카이저링 지음, 홍문우 옮김 / 파람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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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심오한 사상이 담겨 있을 것만 같은 책, 우리의 내면을 더욱 강해지게 만들고 삶의 무기가 된다고 하는 철학, 하지만 철학은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이 앞서기도 하는데요. 무려 800페이지에 이르는 벽돌책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지 궁금해집니다. <방랑하는 철학자>"러시아 제국령 리보니아(지금의 에스토니아 땅)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독일의 철학자 헤르만 폰 카이저링이 1911년부터 1912년까지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세계 일주를 한 기록"을 담은 책입니다.

 

저자 헤르만 폰 카이저링은 러시아 혁명 이후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해 난민으로 떠돌다 비스마르크 가문 사유지에 은신했으며, 비스마르크의 손녀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심리학자 카를 융, 신학자 폴 틸리히, 소설가 헤르만 헤세,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등이 그가 설립한 '지혜의 학교'에 참여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철학자의 여행기가 더 궁금해집니다.

 

 

 

 


이 책은 1'열대 지방으로', 2'실론', 3'인도', 4'극동으로 가는 길', 5'중국', 6'일본', 7'신세계를 향하여', 8'미국', 9'집으로 돌아와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왜 세계일주를 나서게 되었는지, 지중해, 실론, 인도 등등의 나라 여행기,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후의 이야기까지를 담았습니다. <방랑하는 철학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여행기가 아니라, "삶과 운명 앞에서 지혜에 목말라 방황하는 젊은 철학자의 모험담(p.7)"이 담긴 여행기입니다.

 

책을 읽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우리나라에 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하듯 일본편에서 "고구려의 승려이자 화가인 담징이 그렸다는 호류지 <금당벽화>"가 나오는데요. 그는 금당벽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한 번, 나라의 걸작들 앞에서 중세 카톨릭 정신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얼마나 대단한 종합인가. 인도의 지혜, 그리스의 형식, 기독교의 교리가 하나가 되다니! 호류지에 있는 '한국 불상'이 영광의 자리를 차지한다. p.575~576

 

금당벽화는 호류지 재건 연대와 관련하여 담징의 작품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으며 일본 화가가 그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는데요. "이 작품에 대한 서구인의 관찰기로서 이 단락은 극히 귀중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세계일주야말로 자기 자신을 찾는 지름길이다.

-헤르만 카이저링

'방랑하는 철학자' ~

 

"사고방식을 밑바탕부터 혁신하고 가능한 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과 과거의 나 자신을 잊어버릴 만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p.20)"는 저자, 그는 그렇게 '' 자신을 찾기 위한 세계일주를 떠납니다. 지중해부터 뉴욕까지의 일주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인도' 여행기입니다. 불교의 발생지이자 힌두교의 나라 인도, 불교 최고 성지 부다가야에서 들려주는 붓다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불교 최고의 성지 부다가야에 경이로운 영적 분위기가 물씬하다. (중략) 오직 이곳, 위대했던 한 인간이 깨달은 곳에만 특별한 혼이다. 바로 여기에 힘차고 순수하게 한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만든 많은 원인이 있었다. 우선 붓다는 지금도 여전히 푸른 보리수 그늘 밑에서 깨달았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을 깨우칠 만큼 강력한 깨우침이다. p.376

 

저자는 부다가야를 "그리스 델포이 신탁"에 비유하며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각별한 역사의 구심점"이라며, "지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라 말합니다. "예수의 교리는 싯타르타의 교리보다 심오하지만, 예수는 싯타르타만큼 뛰어난 존재는 아니다."라고 말하는데요. "예수는 이 세상 어두운 곳 여기저기에서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햇살과 같다."면서 "예수가 사람들 사이에 살아있는 신"이라면, "붓다는 인간으로 신성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붓다는 훌륭한 인간성을 타고났으며, 풍부하고 깊은 경험도 쌓았으며, 역사상 어떤 사람도 능가하지 못한 수준에 도달했다."라며 "그래서 성자가 철학자보다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불교 교리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여행한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하는데요. 그가 불교와 기독교를 왜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는지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지중해부터 뉴욕까지, 철학자의 여행기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직접 책을 통해 만나길 바랍니다. 꿈오리 한줄평은 책속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사람의 영혼은 알고 이해하는 복을 받을 만큼 무르익을 때까지 어떤 경험이든 겪어봐야 한다. 이 길 말고는 다른 길은 없다. 빠른 지름길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왜 그럴까? 목적이란 외견상의 이해가 아니라 내면의 변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경험의 단계마다 특별한 진실이 부응한다. 나비의 생활 방식은 애벌레에게 걸맞지 않다. 나비는 애벌레의 목적에나 걸맞다.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목적을 이루려면, 우선 애벌레나 번데기 같은 유충의 상태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인간의 영혼도 이와 똑같다. 인간의 영혼은 앎으로써 성장한다. p.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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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전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서거 77주년, 탄생 105주년 기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뉴 에디션 전 시집
윤동주 지음, 윤동주 100년 포럼 엮음 / 스타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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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국어 시험에 꼭 나왔던 시, 절대 빠질 수 없는 시 중 하나가 바로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아닐까 합니다. 그 당시엔 시험공부를 위해 암송하고 의미까지 달달 외우기는 했지만, 그 덕분인지 지금도 입에서 맴도는 시가 되었습니다. 요즘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햇비><자화상> 등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요.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윤동주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는 의미겠지요?

 

윤동주 시인은 "1943년 독립운동을 모의한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징역 2년 형을 선고 받았으며, 19452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둔 시점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여 고향 용정에 묻혔다."고 합니다. "그의 죽음이 일제의 생체 실험 주사에 따른 희생"으로 추정된다고도 하니, 일제의 끔찍하고도 잔혹한 만행에 분노가 차오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유고 시집 초판본부터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서거 77주년 탄생 105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뉴에디션 '윤동주 전 시집'은 초판본부터 증보판,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수록을 보류했던 시와 기존 시집에 실리지 않은 시 그리고 초판본에 실린 정지용님의 서문과 강처중님의 발문을 비롯한 모든 서문과 발문까지 모두 실은 시집입니다.

 

이 시집은 <서시>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초판본에 실린 시 31, 4장에는 추가된 시 35, 5장에는 동요 22, 6장에는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수록을 보류했던 시 23, 7장에는 산문 5, 8장에는 미완성이거나 원고에서 삭제 표시한 시를 포함해 기존 윤동주 시집에 실리지 않은 시 8, 9장에는 모든 서문과 발문을 총 망라해 실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윤동주 전 시집입니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요? 그럼에도 한 점 부끄럼이 없도록 진실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운명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며 절망의 상황을 헤쳐 나아갈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게 됩니다.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영혼의 존재로 살아갈 수는 없을지라도 말이지요.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일제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자신의 모습에 미움을 느끼다가 괴로워하는 자시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다가 끝내는 순수했던 과거 자신의 모습과 이상적인 자아에 그리움을 느끼는 사나이, 사나이는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내적갈등을 겪지만 끝내는 그 갈등을 해소하고 자아와 화해합니다. 지금 우물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떠할까,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할까를 생각해봅니다.

 

 

 

 


 

햇비

 

아씨처럼 나린다

보슬보슬 해

맞아주자 다같이

옥수숫대 처럼 크게

닷자엿자 자라게

햇님이 웃는다

나보고 웃는다.

 

하늘다리 놓였다

알롱달롱 무지개

노래하자 즐겁게

동무들아 이리 오나

다같이 춤을 추자

햇님이 웃는다

즐거워 웃는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햇비'는 볕이 나 있는 날에 잠깐 내리다가 금세 그치는 비를 말합니다. '여우비'라고도 불렀던 비, 여우비가 내리면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라고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해가 떠 있는데도 내리는 비, 아무 걱정 없던 그 시절엔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좋아서 비를 맞으며 뛰어 놀았던 것 같습니다.

 

윤동주의 시 <햇비> 속에도 비를 맞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시인은 <햇비>를 통해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밝게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희망적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 또한 이러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에 대한 해석은 접어주고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시 <별 헤는 밤>을 마음으로 들려드립니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따는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꿈오리 한줄평은 그때와는 다를지라도, 어쨌든 시절이 하 수상한 요즘의 세태를 이야기하는 듯한 책속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조국을 팔아 영예와 지위를 사고 자유를 바꾸어 굴욕과 비굴을 얻어 날뛰는 반역자들이 구더기처럼 들끓는 시궁창 속에 오직 한 마리 은어인 양 청신淸新하였던 시인 윤동주. '정병욱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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