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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로마사 (텐바이텐 로마사) - 천년의 제국을 결정한 10가지 역사 속 100장면
함규진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3년 9월
평점 :
로마의 역사는 세계 문명의 호수와 같다. 로마 이전의 역사는 로마로 흘러 들어갔고, 로마 이후의 역사는 로마로부터 흘러 나왔다. - 레오폴트 폰 랑케
p.37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가면 그 지역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고 따르라는 말인데요. 왜 굳이 '로마'를 지칭한 이런 말이 생겨난 것일까요? 그 어원을 자세히 알 순 없지만, 로마 제국의 위상이 그만큼 컸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가 "모든 역사는 로마로 흘렀고 로마에서 나왔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지요. <10x10 로마사>는 부제 그대로 위대한 영웅부터 몰락한 황제, 여성, 제국을 만든 전쟁과 기술, 건축과 제도, 로마인을 만든 문화와 유산, 책과 신화 등등 '천년의 제국을 결정한 10가지 역사 속 100장면' 을 담아낸 책입니다.
이 책은 1부 '로마의 영웅', 2부 '로마의 황제', 3부 '로마의 여성', 4부 '로마의 건축', 5부 '로마의 전쟁', 6부 '로마의 기술', 7부 '로마의 책', 8부 '로마의 신', 9부 '로마의 제도', 10부 '로마의 유산'까지 10가지의 흥미로운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주제마다 10가지의 핵심적인 장면을 담은 100가지 이야기로 천년 제국 로마의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10x10 로마사>에 담긴 100가지 이야기는 단지 로마의 역사만을 서술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모습을 통해 현재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책을 펼치자마자 등장하는 컬러 도판 로마의 명장면은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으며,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단군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렇다면 로마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우리나라와는 달리 기원 이야기가 여섯 가지나 된다고 하는데요. 가장 믿을 만한 전설은 바로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웠다는 것이라고 하며, 로물루스가 토로이 아이네아스 장군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로물루스의 탄생과 성장, 전쟁의 신이라 불린 로물루스 이야기는 조금 잔인하면서도 과장된 듯한 느낌도 드는데요. 그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비니를 비롯한 이웃 나라의 여성들을 납치해 아이를 낳게 했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로마인과 사비니인들의 사투가 벌어질 때, 납치되었던 사비니 여인들이 두 진영 사이에 서서 싸움을 멈추기를 호소하면서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하며, 그 중심에 헤르실리아라는 여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헤르실리아는 양처의 모범으로 남았다고 하는데요.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그 '현모양처', 현모의 대표주자가 코르넬리아라는 여성이었으며, 헤르실리아는 양처의 모범으로 남아 있다고 하는데요. 현모양처가 여성들의 이상적인 삶의 표본인 것처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에 씁쓸한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로 인해 여성들에 대한 대우가 더 나아졌다고 하며, 여성들에 대한 서구 전통 에티켓은 바로 이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말년에 이르러선 아부하는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무엇이든 제멋대로 결정하는 독재자가 되었고, 원로원과 상의도 없이 중요한 국가적 결정을 내렸다고 하니, 진정한 리더란 어떠해야 할지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듭니다.
로마는 목욕 때문에 망했다, 라는 말이 있을 만큼 목욕 문화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목욕 문화가 사치스럽고 음란하다며 배격했다고 하는데, 정말 로마가 망한 이유 중 하나인 걸까요?
로마인들에게 목욕은 삶의 기쁨이고, 테르메(욕장)는 문명의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최신 설비와 각종 부대시설을 갖춘 욕장을 거대하고 아름답게 지어 귀족과 평민, 남녀를 통틀어서 로마 시민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무료였다) 선물한다는 건, 황제로서 찬사와 지지를 얻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p.267
카라칼라 황제 때 지었다는 카라칼라 욕장은 그 당시 사상 최대의 규모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넓이는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넓이와 비슷하다고 하는데요. 욕장 외에도 운동경기장, 수영장, 헬스장, 파티 장소, 정원 등의 유락 시설이 갖춰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도서관과 미술관, 강의실, 교습실, 정치집회장 등의 공공 문화시설까지 있었다고 하니,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목욕탕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듯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시설을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 이용하는 것이 아닌, 빈민을 포함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는 것과 더불어 모든 로마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는 것으로 폭군에 가까운 카라칼라가 후대의 험한 평가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노예'하면 현대인들은 자동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천부인권에 대한 믿음이 있고,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몸에 쇠사슬이 채워져 채찍질을 당하며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로마의 노예가 그렇게 심한 대우를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p.570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의 로마는 인구 3분의 1이 노예였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심한 대우를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합니다. 물론 극단적인 사례 또한 없지는 않지만, "오히려 일반 시민보다 많이 교육받고, 큰 실권과 이권을 손에 쥐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철학의 에피테토스, 문학의 테렌티우스는 한때 노예였으며, 시인 호라티우스, 교황 칼릭스투스 1세,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노예의 아들이었다고 하며,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노예 신분의 가정교사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며 감사의 표시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와는 다르게, '언젠가, 참고 견디면, 부단히 노력하다 보면 나도 자유인이다!'라는 희망이 모든 노예들의 가슴속에 숨 쉬고 있었음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이 기원전 1세기의 스파르타쿠스 반란이 실패한 주된 이유였다. p.574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결정해주기를 바라며, 시키는 대로 하는 데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노예근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요. 노예들이 대거 동참할 줄 알고 반란을 일으켰던 스파르타쿠스가 실패한 이유는 "견디지 못하게 힘든 것도 아니고, 참다 보면 언젠가 해방될 텐데, 내가 왜?"라며 등을 돌린 노예들 때문이라고 하니,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노예근성'이란 말의 의미가 더 깊이 다가오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노예근성'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600페이지를 훌쩍 뛰어넘는 로마사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직접 책을 통해 만나길 바랍니다.
꿈오리 한줄평 : 로마인들의 삶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돌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