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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하는 철학자
헤르만 폰 카이저링 지음, 홍문우 옮김 / 파람북 / 2023년 7월
평점 :

제목부터 심오한 사상이 담겨 있을 것만 같은 책, 우리의 내면을 더욱 강해지게 만들고 삶의 무기가 된다고 하는 철학, 하지만 철학은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이 앞서기도 하는데요. 무려 800페이지에 이르는 벽돌책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지 궁금해집니다. <방랑하는 철학자>는 "러시아 제국령 리보니아(지금의 에스토니아 땅)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독일의 철학자 헤르만 폰 카이저링이 1911년부터 1912년까지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세계 일주를 한 기록"을 담은 책입니다.
저자 헤르만 폰 카이저링은 러시아 혁명 이후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해 난민으로 떠돌다 비스마르크 가문 사유지에 은신했으며, 비스마르크의 손녀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심리학자 카를 융, 신학자 폴 틸리히, 소설가 헤르만 헤세,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등이 그가 설립한 '지혜의 학교'에 참여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철학자의 여행기가 더 궁금해집니다.

이 책은 1부 '열대 지방으로', 2부 '실론', 3부 '인도', 4부 '극동으로 가는 길', 5부 '중국', 6부 '일본', 7부 '신세계를 향하여', 8부 '미국', 9부 '집으로 돌아와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왜 세계일주를 나서게 되었는지, 지중해, 실론, 인도 등등의 나라 여행기,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후의 이야기까지를 담았습니다. <방랑하는 철학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여행기가 아니라, "삶과 운명 앞에서 지혜에 목말라 방황하는 젊은 철학자의 모험담(p.7)"이 담긴 여행기입니다.
책을 읽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우리나라에 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하듯 일본편에서 "고구려의 승려이자 화가인 담징이 그렸다는 호류지 <금당벽화>"가 나오는데요. 그는 금당벽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한 번, 나라의 걸작들 앞에서 중세 카톨릭 정신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얼마나 대단한 종합인가. 인도의 지혜, 그리스의 형식, 기독교의 교리가 하나가 되다니! 호류지에 있는 '한국 불상'이 영광의 자리를 차지한다. p.575~576
금당벽화는 호류지 재건 연대와 관련하여 담징의 작품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으며 일본 화가가 그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는데요. "이 작품에 대한 서구인의 관찰기로서 이 단락은 극히 귀중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세계일주야말로 자기 자신을 찾는 지름길이다.
-헤르만 카이저링
'방랑하는 철학자' 중~
"사고방식을 밑바탕부터 혁신하고 가능한 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과 과거의 나 자신을 잊어버릴 만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p.20)"는 저자, 그는 그렇게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세계일주를 떠납니다. 지중해부터 뉴욕까지의 일주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인도' 여행기입니다. 불교의 발생지이자 힌두교의 나라 인도, 불교 최고 성지 부다가야에서 들려주는 붓다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불교 최고의 성지 부다가야에 경이로운 영적 분위기가 물씬하다. (중략) 오직 이곳, 위대했던 한 인간이 깨달은 곳에만 특별한 혼이다. 바로 여기에 힘차고 순수하게 한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만든 많은 원인이 있었다. 우선 붓다는 지금도 여전히 푸른 보리수 그늘 밑에서 깨달았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을 깨우칠 만큼 강력한 깨우침이다. p.376
저자는 부다가야를 "그리스 델포이 신탁"에 비유하며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각별한 역사의 구심점"이라며, "지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라 말합니다. "예수의 교리는 싯타르타의 교리보다 심오하지만, 예수는 싯타르타만큼 뛰어난 존재는 아니다."라고 말하는데요. "예수는 이 세상 어두운 곳 여기저기에서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햇살과 같다."면서 "예수가 사람들 사이에 살아있는 신"이라면, "붓다는 인간으로 신성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붓다는 훌륭한 인간성을 타고났으며, 풍부하고 깊은 경험도 쌓았으며, 역사상 어떤 사람도 능가하지 못한 수준에 도달했다."라며 "그래서 성자가 철학자보다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불교 교리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여행한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하는데요. 그가 불교와 기독교를 왜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는지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지중해부터 뉴욕까지, 철학자의 여행기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직접 책을 통해 만나길 바랍니다. 꿈오리 한줄평은 책속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사람의 영혼은 알고 이해하는 복을 받을 만큼 무르익을 때까지 어떤 경험이든 겪어봐야 한다. 이 길 말고는 다른 길은 없다. 빠른 지름길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왜 그럴까? 목적이란 외견상의 이해가 아니라 내면의 변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경험의 단계마다 특별한 진실이 부응한다. 나비의 생활 방식은 애벌레에게 걸맞지 않다. 나비는 애벌레의 목적에나 걸맞다.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목적을 이루려면, 우선 애벌레나 번데기 같은 유충의 상태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인간의 영혼도 이와 똑같다. 인간의 영혼은 앎으로써 성장한다. p.7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