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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하는 소설 ㅣ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안보윤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평점 :

우리는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이, 학력. 직업, 거주지, 건강 상태는 변하는 것이고, 이런 조건에 따라 약자로서의 정체성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현저히 부족합니다. p.6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흔히 사회적 소수자이자 약자로 부르는 아동, 노인, 저소득층, 장애인, 성 소수자, 이주 노동자 등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순 없습니다. 때로는 안타까워하면서도 때로는 불편함을 주는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얼마 전 뉴스에 나오기도 했던 "폭염을 피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노인들"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존하는 소설>은 부모에게 학대받는 아동,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청년, 친절사원이 될 기회를 박탈당한 인력회사 파견 직원, 절친들에게조차 이해받기 어려운 성 소수자, 저소득층 독거노인, 명백한 피해자임에도 원인제공자가 되는 여성, 혐오의 대상이 되는 요양원의 노인들, 불법 체류 노동자 등등 사회적 약자를 주제로 한 단편 소설 8편이 실려 있습니다.
어린이집 입학 당시 가족관계증명서보다 아동복지국 공문이 먼저 도착한 주승이, <밤은 내가 가질게> 속 주승이는 엄마의 지속적인 학대로 보호자가 할아버지로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끊임없는 폭력에 시달립니다. 주승이에게 가족이란 어떤 존재였을까요?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에트로> 속 '나', 취업 준비를 위해 서울 생활을 시작했지만,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던 서울에서 '나'는 아직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대의 대부분을 보낸 서울, '나'에게 서울은 언제 취업의 기회를 줄까요?
창고형 대형 마트에서 인력회사 파견 직원으로 일했던 해주, <빙하는 우유 맛> 속 해주는 이 달의 친절사원이 되어 상금을 타고 빙하를 보러 갈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합니다. 하지만 파견 직원은 상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력회사 파견 직원이라는 이유로 동등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 해주의 직장은 어디일까요?
레즈비언이라 고백한 친구 진희, 가혹한 말보다 더한 눈빛으로 진희를 바라보았던 미주, <고백> 속 미주는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후에야 자신이 진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진희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고백하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너의 편이라고, 외롭고 아프게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깨어나지 않기를 소원하면서도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할까 봐 두려운 '그', 법적 부양 의무자인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 생활 보호 대상자조차 되지 않는 '그', 쪽방촌에서 폐지를 주워 근근이 먹고 사는 '그',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속 얼어 죽어 가는 '그'의 곁에 남은 건 아내가 죽기 전에 데려온 개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법적 부양 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복지의 사각 지대에 놓인 수많은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외모 때문에 종종 남자로 오해받는 <공원에서> 속 수진, 수진은 여자라는 것이 발각(?) 되면서 무차별적 폭력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엄마도 경찰도 수진이 왜 그 시간에 그 곳에 갔었는지를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마치 수진이 폭력의 빌미를 제공한 것처럼 말이죠. 수진은 그저 무차별적 폭력의 피해자일 뿐임에도...,사회가 정해놓은 여자다움, 남자다움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백은학원연합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경화, 백은빌딩 옆에 요양원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리자 근처 아파트 입주자들과 함께 반대 의견을 내며 공사 진행을 막으려 합니다. 요양원에 입원한 노인들은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데요. <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 속 경화는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게 되고 자신이 그런 엄마를 돌봐야하는 처지가 되자, 극구 반대하던 입장에서 찬성의 입장으로 돌아섭니다. 자신의 처지에 따라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댄 경화, 우리는 경화의 태도를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인천에 있는 전문대학 부설 한국어 학원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수', 수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장기 체류 하기 위해 비싼 등록금을 내고 어학원에 등록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아닌 돈을 버는 것이었으므로, 학생 비자를 취득하면 바로 불법 취업을 합니다. 수에게 한국어를 배우던 쓰엉도 그런 연유로 불법 취업이 발각되어 중국으로 송환되면서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들을 하는 불법 체류자들이나 이주 노동자들, 만약 그들이 모두 강제 출국된다면, 그들이 하던 일은 누가 대신할까요? 꿈오리 한줄평은 책속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문학은 우리를 타인의 삶으로 인도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영역을 확장시킵니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죠. 문학이 유토피아 같은 세상을 만들 수는 없지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향한 토론의 장은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질문하고 고민하며 스스로를 변화시킬 때입니다. p.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