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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전 시집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ㅣ 전 시집
백석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7월
평점 :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고 말하는 시인.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라고 말하는 시인.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같다는 시인 백석. 백석 전 시집 '나와 나탸사와 흰 당나귀' 서문 중~
백석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백기행이지만, 아호였던 백석을 필명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하고, 이듬해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었고, 조선일보 후원 장학생으로 도쿄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조선일보 편집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하였으며, 조선일보 퇴사 후 함흥 영생교보의 영어 교사로 부임하였고, 1939년부터 만주에 머물다 해방 이후 고향인 정주로 돌아가 북에 정착하였다고 합니다.
1935년 첫 시 <정주성>을 발표하며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고, 1936년 33편의 시로 이루어진 시집 <사슴>을 출간하였는데, 이 시집은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자가 출판으로 한정판 100부만 찍었다고 합니다. 그런 탓에 백석 시인을 가장 존경한다는 윤동주 시인은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백석의 시를 직접 필사해서 읽었다고 합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1부 '첫 시집이자 유일한 시집' <사슴>, 2부 '그 외 해방 이전의 시', 3부 '해방 이후의 시'까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00여 편이 넘는 시가 실려 있습니다.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많이 알려진 시입니다. 꿈오리 또한 학창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지만, 그 외 어떤 시를 썼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두 형제 초딩 시절에 동화시 <귀머거리 너구리와 백석 동화나라>를 읽으면서 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썼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요. 동물에 빗대어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여준 작품들은 금세 읽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백석 전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실린 시들은 "시인이 의도적으로 사용한 고어와 토착어, 평안도 방언"을 그대로 살려 실었기에 금세 읽히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어서 읽을수록 빠져 들게 만듭니다. 더불어 시를 읽어 내려가며 시에 담긴 풍경을 그려보게 되는데요. 산문시 <황일>을 읽다보면 따스한 봄날의 풍경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황일
한 십리 더가면 절간이 있을 듯한 마을이다 낮 기울은 볕이 장글장글하니 따사하다 흙은 젖이 커서 살같이 깨서 아지랑이 낀 속이 안타까운가 보다 뒤울안에 복사꽃 핀 집엔 아무도 없나 보다 뷔인 집에 꿩이 날어와 다니나 보다 울밖 늙은 들매나무에 튀튀새 한불 앉었다 흰구름 따러가며 딱장벌레 잡다가 연둣빛 닢새가 좋아 올라왔나 보다 밭머리에도 복사꽃 피였다 새악시도 피였다 새악시 복사꽃이다 복사꽃 새악시다 어데서 송아지 매-하고 운다 골갯논드렁에서 미나리 밟고 서서 운다 복사나무 아래 가 흙장난하며 놀지 왜 우노 자개밭둑에 엄지 어데 안 가고 누웠다 아릇동리선가 말 웃는 소리 무서운가 아릇동리 망아지 네 소리 무서울라 담모도리 바윗잔등에 다람쥐 해바라기하다 조은다 토끼잠 한잠 자고 나서 세수한다 흰구름 건넌산으로 가는 길에 복사꽃 바라노라 섰다 다람쥐 건넌산 보고 부르는 푸념이 간지럽다
저기는 그늘 그늘 여기는 챙챙-
저기는 그늘 그늘 여기는 챙챙-
백석 전 시집 '나와 나탸사와 흰 당나귀'에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전 시집 '나와 나탸사와 흰 당나귀'에서~
가난한 화자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이루기 힘든 현실에 고뇌하다가, 나타샤와 함께 흰 당나귀를 타고 깊은 산골로 가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현실에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뇌하지만 상상 속에선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떠나는 화자, 눈과 흰 당나귀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정말 낭만적인 것 같습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겨울날에 다시 한 번 더 읽어보렵니다.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이하 중략)
백석 전 시집 '나와 나탸사와 흰 당나귀'에서~
한 행 한 행 읽어 내려갈 때마다 어렵게 시작했지만 그래도 행복해하던 그 시절이 생각났던 시 <흰 바람벽이 있어>, 택시를 타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하던 그 시절, 그날따라 무리를 한 것인지 만삭의 몸을 이끌고 집까지 걸어올라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작은 구멍가게 앞에 있던 빈 주류 상자에 앉아서 쉬다가 괜스레 서러워 펑펑 울었었는데요. 지금은 그것 또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흰 바람벽이 있어> 속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지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는 문장이 더 깊이 다가오는 건, 그런 연유인 듯합니다. 꿈오리 한줄평은 '서문' 속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그의 시가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있지 않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을 가지고 사는 독자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기를 염원합니다. 백석 전 시집 '나와 나탸사와 흰 당나귀' 서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