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단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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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할러 시리즈 5번째 이야기 <배심원단>을 읽었다.

이번 이야기에서 미키 할러는 한때 좋아하는 감정을 지녔던 '글로리아 데이턴'의 죽음에 얽힌 사건과 그녀를 만나게 된 계기가 된 사건과의 연결점을 파헤치며 진실을 찾아 헤맨다.

 

미키 할러는 LA 지방검찰청장 선거에서 패배하고, 자신이 변호해서 석방된 피고인이 음주운전으로 딸과 잘 알고 지내던 무고한 두 사람을 죽게 만들자 딸에게서도 외면당하는 등 그의 평판은 현재 최악이다.

그러던 어느날(11월) 미키 할러에게 살인사건 수임 의뢰가 들어온다.

피의자 '안드레 라 코세'는 디지털 포주로 콜걸들의 웹사이트를 관리했는데, 자신이 관리하던 콜걸 '지젤 댈링거'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라 코세는 자신이 피해자를 죽이지 않았다고 범행을 부인하고, 그녀에게서 무슨 일이 생기면 미키 할러가 도와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그에게 연락을 했다라고 말한다.

미키 할러는 죽은 지젤 댈링거가 7년 전 자신이 새 출발을 하도록 도왔던 '글로리아 데이턴'이라는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한다. 미키는 그동안 그녀가 하와이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글로리아의 행적을 조사하던 미키는, 그녀가 살해되기 전날 밤에 베벌리 윌셔 호텔의 객실로 손님을 만나러 갔지만 해당 객실에 투숙객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호텔 CCTV를 확인하던 중 누군가 글로리아를 미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지만, 미행자는 모자를 쓰고 고개도 들지 않아 얼굴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4월 미키는 소환장을 받는다.

글로리아는 마약수사국의 비밀 정보원으로 '헥터 아란데 모야'라는 마약상 체포에 일조했고 헥터는 그 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복역중인 헥터가 자신은 억울하다며 '인신구제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미키는 헥터의 인신구제 청구소송과 글로리아의 죽음이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 추측한다.

글로리아는 왜 죽음을 당해야 했을까? 아니, 글로리아는 왜 미키를 속이고 하와이에 있는 척 했던 걸까?

 

미키는 헥터의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인신구제 청구소송의 증인들을 확인하여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당시 몰랐던 사실들이 무엇인지, 글로리아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글로리아를 죽여서 이득을 얻는 이는 누구인지 등 미키는 사건의 숨겨진 사실들을 확인한다.

사건의 핵심 관계자는 그렇게 진실에 다가가는 미키를 미행하고, 그를 협박하기도 한다.

 

미키는 사건의 관련성과 진실을 밝히고, 의뢰인 라 코세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을까?

 

스릴러 거장이라는 호칭은 괜히 붙여지는 건 아닌가 보다. 얇지 않은 책인데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전작들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돈 밝히고 악덕 변호사 취급을 받는 미키 할러가 이번 이야기에서는 인간적인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미키는 자신이 풀어준 의뢰인이 사람을 두 명이나 죽였다는 것에 괴로워한다. 딸이 자신을 경멸하고 외면하는 것에 대하여도 아무 변명도 할 수 없다.

거기다 한때 자신이 좋아했고 믿었던 여성이 자신을 속였고, 그 판 위에서 자신은 그저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조사를 진행하던 중 소중한 사람을 잃는 사건까지 생긴다.

이건 뭐 설상가상, 점입가경이다. 그래서 계속 긴장감을 가지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괜히 주인공이 아니라는 거~~!!

능력있고 훌륭한 사무실 식구들과 정신적 지주 리걸 시걸, 그리고 무엇보다 실력 출중한 미키 할러는 이 난관을 다 헤쳐 나간다.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을 시리즈별로 집중적으로 본 게 아니라서 몰랐는데, 마이클 코넬리의 유명한 시리즈의 주인공들인 해리 보슈와 미키 할러가 이복형제였다. 두둥...

언젠가는 각 시리즈를 순서대로 한 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키 할러와 해리 보슈 각각의 캐릭터들의 매력을 모두 확인하고 싶어졌다.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 여러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야기, 끊임없이 유지되는 시원한 긴장감까지 스릴러 소설의 매력을 모두 가진 소설이었다.

 

(p. 27)

법은 유연한 거야. 구부릴 수도 늘일 수도 있지

 

(p. 510)

누구에게나 배심원단이 있다. 마음속에서 함께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얼 브릭스가 내 배심원석에 앉아 있고, 글로리아 데이턴도 그렇다. 케이티와 샌디, 내 어버니와 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얼마 안 있으면 리걸 시걸도 합류할 것이다.

내가 사랑했고 내가 상처 준 사람들. 나를 축복하고,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사람들.

내 단죄의 신들. 나는 그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날마다 그들 앞으로 걸어가서 변론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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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이도우 산문집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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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방영중인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원작소설의 작가인 이도우 소설가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소설이든 만화든 에세이든, 좋은 문장을 보면 끄적이기 좋아했던 나는 오래전부터 작가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그렇게 많이 들어보았고, 많은 사람들의 추천이 있었는데도 정작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이제야 만나게 된 작가의 산문집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속에는 내가 바랐던 것 이상의 따뜻한 문장과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진심을 쓴다는 마음은 여전해도, 그 마음이 무게와 가치를 지니고 오래 남아야 하는지는 내가 헤아릴 일이 아니었다.

나뭇잎에 한 장씩 쓴 이야기가 누군가의 책갈피에 끼워졌다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도 상관없지 않을까. (P. 9)

 

이 책을 한 번이 아닌 여러 날에 야금야금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건, 따뜻한 작가의 시선을, 그 위트를 금방 금방 소진해버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015B의 노래를 많이 듣고 찾아봤다.

작가가 대학 시절 만가대 과수원 자취방에서 살던 때 즐겨 들었다던 015B의 '5월 12일'은 나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였다.

괜시리 이 부분을 읽다가 015B의 노래를 듣다 추억에 잠기다 급기야 눈물까지 났다. 결국 그 날은 이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

 

감성적인 로맨스를 써 온 작가님이기 때문일까.

책을 읽는 동안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이 또 계속 맴돌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 시작은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015B의 노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같은 빌라에 살고 있던 첫사랑 오빠가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서, 나는 늘 내 방 창가에서 한 손은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은 뭔가를 끄적이며 빌라로 내려오는 단 하나의 길을 지켜보고 지켜봤다.

(작가가 삼십 대 초반에 아프고 우울했던 시절에 아파트 뒷방 창을 열고 멀리 있는 산과 그곳의 작은 암자를 바라보았다는 부분을 읽을 때, 난 이게 생각났다.)

오빠네 가족들과 우리 가족들이 함께 갔던 노래방에서 오빠가 그 당시 인기있던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불렀었지.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문장들이 많았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친구 이야기에서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도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닐지, 아니 되어버린 건 아닐지...

 

작가가 서귀포의 스타벅스에서 만난 할머니가 일반인 남극 탐험대에 도전하기 위해 영상 촬영 등의 도움을 부탁했다는 부분에서는, 괜시리 웃음이 났고 용기가 생겼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모험이란 과연 있을까. 기회는 어느 시절을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 걸까.(p. 170)"에 아니라고, 언제나 새로운 행복과 자유를 꿈꿀 수 있다라며 멋지고 아름다운 일탈을 상상하게 된다.

 

좋은 시절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정말 지겨운 나날이고 사는 게 엉망진창이라고 투덜대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때가 지나면 비로소 알게 된다.

돌아보니 참 좋은 날들이었구나, 그땐 왜 몰랐을까 라고.

좋았던 시절은 그 무렵엔 느낄 수가 없지만, 한 시절에 이별을 고하려는 순간 새삼 좋은 날이었음을 알려주어 고맙고 서글프게 한다. (p. 288)

 

나이가 든 후에는, 특별한 일이 있어야 좋은 날인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지나가거나 혹은 오늘 하루 내가 기분 나쁜 일이 없거나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좋은 날이라는 걸 안다.

조금 생뚱맞은 예시지만, 너무 살이 많이 쪘다고 느꼈던 10년 전, 5년 전의 내 모습이 지금 현재의 나에게는 너무나 부러운 시절이다. 그때가 제일 날씬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때였다는 걸, 너무 늦게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바람에 하늘거리는 '나'는 포기하는 걸로... ^^;)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이번 산문집을 읽고 나니 작가의 소설들이 더 궁금해졌다.

작가의 문장 속에 간간히 등장하는 소설 이야기나 소설 속 인물들을 정말로 만나고 싶어졌다.

 

깊은 밤, 이야기하기 좋은 이런 밤, 굿나잇 책방 은섭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우리가 함께 반짝였던...

수많은 그 밤에...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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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총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김예진 옮김 / 검은숲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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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현대식 스포츠 전당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와일드 빌 그랜트 로데오의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퀸 부자와 그들의 집사 주나, 주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왕년의 영화 스타 카우보이 '벅 혼'을 본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개막식의 오프닝은 와일드 빌의 총성을 신호로 "벅 혼이 이끄는 마흔 명의 기수들이 경기장 주위를 돌며 벌이는 전력질주 추적 쇼"가 시작된다.

관람석을 가득 메운 2만 명의 관중들은 엄청난 환호를 하며 그를 반기고, 앞서 달려가던 벅 혼이 천장을 향하여 총을 발사하자, 뒤따르는 기수들도 모두 위를 향해 총을 쏘아 올린다.

그런데 사격 직후 벅 혼은 말 위에서 떨어지고 그의 몸은 뒤이어 오던 말들의 발굽에 짓밟힌다.

 

벅 혼의 사망 원인은 심장을 관통한 단 한 발의 총알이었다. 2만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난 살인, 그러나 기수를 포함한 관람객 모두의 소지품을 검사했으나, 벅 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총을 찾지 못한다.

 

벅 혼을 죽인 총은 25구경으로 보통 서부극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총이었다. 마흔 명의 기수에 교묘하게 끼어든 기자 테드 라이언스를 찾아내지만 그가 가진 25구경 권총 역시 벅 혼을 죽인 총은 아니었다.

 

필요한 건, 한 사람의 죽음.

사용된 건, 한 발의 총알.

간결하고, 정확하고, 기계적이군요...

모두 합해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아버지? (p. 146)

 

콜로세움 전체를 확인하고, 관람객 모두의 소지품을 검사했지만 살해 무기는 발견되지 않고, 엘러리는 주변 인물에 대한 미행 등을 부탁하고, 자신 역시 벅 혼의 주변 인물들과의 만남을 지속하며 사건을 조사한다.

엘러리는 어떤 단서를 찾고 범인이 누구인지 직감하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신중히 증거를 찾기 위해 조사를 계속하고, 아버지인 퀸 경감에게도 자세한 사정을 밝히지는 않는다.

 

사건이 지지부진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중에, 콜로세움 출입 금지가 해제되고 와일드 빌 그랜트의 로데오가 재개장하고, 그렇게 2만 명의 관중이 가득 모인 쇼에서 기수들을 맨 앞에서 이끌던 '외팔이 우디'가 벅 혼과 동일하게 죽음을 당한다. 심장에 단 한 발의 총상을 입고 즉사, 살해 무기인 총은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크하하하하.

솔직하게 이번 이야기 역시 범인에 대한 감을 조금도 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죽였는지, 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엘러리는 모든 단서를 공평하게 독자에게 제공했다면서 우리한테도 범인을 맞춰보라고 말하지만, 도저히 나는 모르겠더라.

 

범인을 알고 난 후에 보니, 과연 단서가 여러 군데 흩어져 있었고, 내가 눈썰미가 조금만 더 좋았어도 범인은 알아챌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이번 이야기는 읽는 동안 좀 더 재미있다고 느꼈는데, 특히 탄도학 전문가인 놀스 경위와 커비 소령의 총에 대한 그렁그렁한 애정을 보는 게 즐거웠다. 캐릭터들이 좀 더 생동감있게 느껴졌달까.

그리고 확실히 국명 시리즈의 뒤로 갈수록 현대와 더 가깝기 때문인지 사건 해결이나 조사 과정을 어색함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다음 이야기도 역시나 기다려진다.

다음에도 독자에의 도전은, 좋아!! 받아들입니다!!!

(다만, 범인을 맞춘다는 말은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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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프렌즈, 그건 사랑한단 뜻이야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흔글·조성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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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필요했던 건 온전한 내 마음.

그 무엇에도 상처받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내 마음. (p. 143)

 

 

 

카카오프렌즈의 라이언, 어피치, 튜브, 무지, 네오, 프로도가 각자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위로를 주었던 것이 불과 얼마전인 것만 같은데,

이번에는 카카오프렌즈 모두가 지친 우리에게 위로와 위안과 용기를 주려고 살며시 다가왔다.

《카카오프렌즈, 그건 사랑한단 뜻이야》는 우리가 사랑하는 카카오프렌즈 여덟 명과 40만 SNS 독자를 위로하는 작가 흔글의 다정한 문장들로 가득했다.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

혼자서도 근사한 사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이 지치면 언제나 곱씹기를.

가끔은 혼자니까 괜찮기도 해. (p. 26)

 

어린 시절에는 친구가 없으면 정말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혼자라는 것이, 그래서 외롭다는 그 사실을 참 견디기 어려워했던 시절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연애를 해도, 결혼을 해도 혼자인 시간은 반드시 존재하고, 또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혼자라는 걸 외롭고 힘들게 느낄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함께여도 좋고, 혼자여도 좋은...

어쩌면 정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끔은 혼자의 시간을 만끽하며, 혼자서도 충분히 괜찮고 근사한 시간을 보내며, 나를 조금 더 돌아보고 나를 위로하고 토닥여주는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모든 건 어느 정도의 틈이 필요하더라.

틈이 없으면 어딘가 곪아버릴 수도 있거든. (p. 52)

 

너무도 공감갔던 문장이었다.

우리는 틈을 벌리지 않으려고, 가끔은 우리의 감정을 속이거나 참거나 견뎌낸다. 마치 사람들과의 그 자그마한 틈이 우리를 외로움과 쓸쓸함의 구덩이로 빠뜨리는 문이 되어줄까봐 걱정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말이야. 조금은 벌어져도, 거리를 유지해도 충분히 괜찮다는 걸 나이가 드니 알 것도 같다, 라는 생각...

 

 

날씨가 좋다는 핑계로

누군가를 불러내기 좋은 계절이 왔어.

언젠가 내가 바람이 참 좋다고

걷고 싶다고, 넌지시 말한다면

그건 사랑한단 뜻일지도 몰라.

바람에 마음을 담기 좋은 날이야. (p. 86)

 

내가 좋아하는 봄, 따뜻하고 환한 햇살에 살랑거리는 바람까지... 정말 누군가를 부르기 너무도 좋은 예쁜 계절.

활짝 핀 벚꽃마저 흐드러져 바람에 날린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만 같은 봄날의 오후는 소중한 사람과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며 부드러운 카페라떼를 마시고 싶다.

물론 특별한 핑계나 이유가 없어도 만날 수 있는 사이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서라든가, 꽃이 너무 예뻐서라든가 괜히 그런 핑계를 대며 만나자고 하고 싶은, 괜히 그런 봄.

살랑거리는 바람 안에 내 마음을 가득 담아 소중한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더없이 느끼고 싶은 그런 봄날에...

"같이 걸을래?"

 

 

남들 속도에 나를 맞추기보다

그저 나의 속도대로 가는 게 더 중요하더라.

조금 느리게 걸으면 좀 어때?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만으로

우리는 더 나아진거야. (p. 198)

 

가끔, 아니 자주 남들과 비교하는 스스로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은 그에 따라가질 못한다.

그런데, 저 문장처럼, 내가 아무리 남들보다 느려 보이고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분명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갔으리라.

아직 결승선은 저 멀리 있으니, 결승선까지 포기하지 않고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나를 사랑하고 아끼며 하루하루의 소중한 일상을 사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어느순간 마음 속을 가득 채워버린 이 깜찍한 친구들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계속 웃음을 주고 행복을 느끼게 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추가로, 지갑도 열게 하겠지만.. ^^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았던 따뜻하고 반짝반짝거리는 예쁜 문장들 덕분에 잠시나마 마음에 여유와 편안함이 찾아왔다.

가볍게 읽었고, 그래서 앞으로도 더 자주 펼쳐보며 편안하게 문장들을 읽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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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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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네 혹은 사는 아파트 평수로 아무렇지 않게 친구를 규정하고 배척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요.

너는 어느 아파트에 살아? 몇 평에 살아?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나고 사귀는 친구들을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친구들로 한정해 버린다는 이야기였어요.

참 안타깝고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야기였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 역시도 드러내놓고 구분하지는 않지만 좀 더 나은 동네로, 좀 더 큰 평수로 이사를 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소설 속 '홍이'는 어린 시절을 '남일동'에서 보냅니다. 친구들과 해가 진 후에 놀라치면, 엄마는 화를 내며 "네가 가겟집 애도 아니고, 보살피는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길바닥에서 놀고 있어."라며 야단을 칩니다. 아이들이 그 말의 정확한 속뜻을 알기는 어렵더라도, 자신과 자신의 부모를 얕잡아 보고 있다라고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겠지요.

홍이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이곳 남일동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싫었고, 하루빨리 이 동네를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죠.

아버지는 경매를 통해 집을 샀지만, 남일동을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그러다 홍이가 중학교 3학년 때, 남일동이 반으로 쪼개지고 홍이가 살던 곳이 중앙동으로 편입되면서 드디어 홍이의 가족은 남일동을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홍이는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직원을 돕거나 챙기다가 오히려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그 스트레스 때문인지 갑작스럽게 심한 두드러기가 생겨 남일동에 있는 제일약국에서 약을 사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일약국에서 '주해'와 '수아' 모녀를 만나게 됩니다.

 

남일동 달산 밑에서도 안쪽으로 들어가는 집으로 새로 이사를 온 주해 모녀와 약국에서 몇 번 마주치게 된 홍이는 어느덧 주해의 집도 놀러가고, 주해가 바쁠 땐 수아를 돌보기도 하는 등 한층 이들과 가까운 사이가 되요.

홍이가 본 주해는 참 멋있는 사람이었어요.

구청이나 시청을 몇 번이고 찾아가는 등의 노력을 해서 어두운 골목길에 가로등을 설치하게 하고, 마을버스가 동네 안까지 들어오게도 합니다.

남일동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자 수아와 함께 아파트에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재건축위원회에 소속되어 열심히 활동도 해요.

 

그러나 주해의 과거가 문제가 되자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들의 일에 해가 될까 내쫓기 바쁩니다. 

 

어느날 홍이와 같이 있던 수아가 묻습니다.

"이모, 여기 길 건너면 중앙동이야? 길 안 건너면 남일동이고?"

 

수아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자신을 '남민'이라고 부른다고 말합니다. '남일동에 사는 난민'.

홍이는 어린 시절 중앙동으로 편입된 후 전학을 가는데, 전학간 학교에서 친구들이 홍이를 '남토'라고 놀렸어요. '남일동 토박이'.

 

불과 길 하나 차이로 사람들이 그리 꺼려하고 무시하는 남일동과 사람들이 선호하는 중앙동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그리고 동네의 차이로 차별을 받고 무시를 받는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당했을까요...

아이들이, 청소년들이 도대체 무얼 알고서 저렇게 잔인한 말로 친구를 놀릴 수 있는 걸까요?

 

아이들의 그런 모습은 아마도 우리 어른들에게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이겠지요.

주해는 남일동에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친밀해지려 애썼지만, 과거의 일이 폭로된 후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전과 같이 대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노력했던 일들도 이젠 그들의 마음 속에서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p. 56)

친절이나 호의를 받을 줄 모르는 사람들.

선의나 진심에 찬물을 끼얹는 이들.

무례와 몰상식이 몸에 밴 인간들.

그러니까 외지 사람들이 남일도, 남일도 할 때 그 남일도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모두들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뿐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을 경제력으로 구별하고 그런 생각을 아이들에게 주입해버린 어른들도, 결국은 자신과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였겠지요.

하지만 말이에요.

어른들의 그런 행동들이 과연 행복을 위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더 넓은 행복, 다 같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은 없었을까요.

 

남일동과 중앙동을 벗어나도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구별하고 나누고 차별하는 곳은 많을 것이고, 이런 행동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겠죠.

주해와 수아는 이곳보다는 조금 더 행복한 곳으로 갔을까요?

부디 그 곳에서는 주해와 수아가 따뜻하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기를...

 

(p. 125)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드나들었지만 끄떡도 하지 않고 지금껏 그대로인 남일동의 진짜 얼굴을 비로소 목격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

여기 사는 그런 마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것들은 저절로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끝없이 누군가에게 옮아가고 번지며, 마침내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고 또 대물림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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