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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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은 사도행전을 분석하며 작가가 추측한 기독교의 창안 과정에 관한 책입니다. 일인칭 서술자는 작가임이 분명하지만 또한 백 퍼센트 본연의 작가는 아닐테니 소설이란 양식이 어색하진 않지요. 한 유대인 랍비, 그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의 인생을 바쳐 기독교의 기틀을 만든 바오로, 옆에서 지켜보며 그의 행장을 기록한 의사 루카, 베드로•야고보 등 예수 곁에서 살았으나 바오로와 반목한 예수의 제자들과 동생. 작가는 성경의 이야기와 자신의 추측을 씨줄과 날줄 삼아 <왕국>을 써내려갔습니다.

또한 이 책은 ‘나’의 배교의 여정이자 믿음을 파기하는 과정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가톨릭 교도로 살고자 파고들고 파고든 결과가 불가지론이지요. 신이 없다는 믿음조차 작가는 두려워합니다. 신은 윤리적이지도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습니다. 예수가 들려준 신은 그냥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누군가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누군가에겐 이 책은 신앙 입문서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라르슈 공동체에서 만난 엘로디의 천진난만한 시선에서 ‘나’가 체험한 ‘왕국’을 작가는 감동어린 필체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왕국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엔 본인이 ‘똑똑하고 부유하며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 당분간 프랑스 남자가 쓴 소설은 읽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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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과학교양서 베스트3입니다. 선정기준은 정확도 영향력 필력 유용성 이런 거 절대 아니구요,개그. 오직 하나의 기준 개그. 개그입니다.

1. 풀하우스
2. 거의 모든 것의 역사
3. 우주 시간 그 너머


다음 기준은 다정함입니다. 역시 내용상의 다정함보다 문체의 다정함을 기준으로 삼았어요.
1. 코스모스
2.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말하다
3. 모든 순간의 물리학

어느 쪽에든 올리버 색스를 넣고 싶었는데 넣질 못했네요.

한편 올해 읽은 과학교양서들 중 60% 정도밖에 이해 못한 책입니다.
1. 패러데이와 맥스웰(후반부 맥스웰의 여러 방정식들에서 우주를 보았습니다.)
2. 중력파(중력파가 향후 어떻게 이용되는 지에 대해 서술한 후반부에서 블랙홀을 보았습니다)
3. 숨겨진 우주(저자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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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2019-11-30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서 선정 감사드려요 ~~^^ 나머지 4권도 완독해 볼께요...올리버 색스도 넣어주세여^^;

조그만 메모수첩 2019-12-01 10:33   좋아요 0 | URL
덧글 감사드려요~ 올리버 색스를 위한 베스트3을 따로 만들어봐야겠어요 ㅎㅎ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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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를 처음 읽은 때는 1993년이었습니다. 세상에나. 아직도 93년은 제게 그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음을 시시콜콜 말할 수 있는 가까운 시간인데 26년 전이군요. 26년 전의 시시콜콜이 두뇌에 차지한 면적 때문인지 책의 내용은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읽을 때 재미있었다. 스카웃이 귀여웠다. 스카웃의 영웅적인 행동으로-뭐였더라 두려움에도 아랑곳없이 할 말을 해서였는데-아버지를 구했다. 인종차별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끝.

새로운 장정으로 출판되자마자 구입한 것 같은데 책꽂이의 정령마냥 서려있기만 했던 세월이 지나고, 얼마 전 다시 읽기를 마쳤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읽었다’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내용이 새롭더군요 ;;;

첫 독서가 남긴 가난한 기억에도 불구, 스카웃이 메이콤의 감옥으로 톰과 핀치 변호사에게 린치를 하기 위해 몰려온 마을 사람들을 물리치는-이라기보다 그들의 선한 부분을 끄집어내어 스스로 돌아가게 만드는-부분은 당시에 보던 그대로의 장면이었습니다. 26년 간 매년, 한 해도 빠짐없이 저는 이 장면을 문득 떠올리곤 했는데, 언제나 어둠, 그리고 핀치 변호사가 켜둔 한 점의 여린 전등빛과 함께 떠올랐지요. 가끔 저는 그 장면을 읽은 것이 아니라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닐까 의심해본 적도 있습니다(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영화는 아직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독서에서 인상적인 것은 저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첫 독서 때보다 스카웃과의 심리적 거리가 많이 멀어졌어요. 관찰하는 서술자지만 뚜렷한 캐릭터를 갖고 서사에 기여하는 바가 많았지만, 애티커스 핀치에게 눈을 빼앗기는 바람에 솔직히 스카웃은 눈에 덜 들어오더군요. 그는 시민으로서 부모로서 모든 면에서 제게 반성 거리를 한아름 안겨준 캐릭터였으니 말이죠. 이상주의자면서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환경적으로 혹은 태생적으로 약하게 태어나 악하게 된 자들에 대한 연민을 행동으로 보여주며 변호사 답게, 법정이 아닌 일상 공간에서도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몸에 배인 사람 말이지요. 심지어 패배했을 때 인간은 어떻게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대답을 이 인물로부터 얻기도 했습니다. 물론 애티커스 핀치의 이런 성품이 직업도 좋고, 머리도 좋고, 심지어 명사수에 이웃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는 후광이 없을 때 그에게 얼마만큼의 고통을 안겨줄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긴 했지만요.

사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었어요. 정말이지 딱 한 장면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톰 로빈슨의 재판을 몰래 방청간 꼬마들 중 하나인 딜이 우는 장면이지요. 검사가 다른 증인에게와는 다르게 톰을 박대하자, 딜은 울기 시작합니다. (재판 장면은 이 소설의 핵심 서사임에도 작가는 서술자인 스카웃을 딜과 함께 법정에서 나오게 하여 그 장면 일부를 놓치게 만들어요. 지금은 이해하지만 처음엔 의아했지요.) 스카웃이 딜에게 우는 이유를 묻습니다.

—-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건 바로 그 사람 때문이야.” 딜이 말했습니다.
“누구, 톰 말이야?”
“그 늙은이 길머 검사 말이야. 그런 식으로 그를 대하다니, 그렇게 경멸적으로 말하다니...”
“딜, 그게 그분의 직업이잖아. 검사들이 없다면, 그럼 아마 피고를 변호해 줄 변호사들도 없게 될걸.”
딜은 참을성 있게 숨을 내쉬었습니다. “스카웃, 나도 그건 알아. 난 바로 그 사람의 말투 때문에 구역질이 난 거야. 그냥 구역질 말이야.”
—-


스카웃은 톰이 흑인이라 어쩔 수 없다며 세간의 편견을 전하고, 딜은 그런 건 손톱만큼도 옳지 않다고 항변합니다. 그때 동네 또라이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가 울던 딜을 위로합니다.


—-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 봐, 그렇게 될 테니.”
“아저씨, 내가 도대체 뭐 때문에 운다는 거예요?” 딜의 남자다움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고통 때문에 우는 거지. 심지어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말이야. 흑인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생각한 것도 아닌데 백인이 흑인에게 안겨 주는 그 고통 때문에 우는 거란 말이다.”




위로 받은 딜은 눈물을 그쳤지만, 위로를 읽은 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는 어른인 제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다시는 그 어린 양심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지요. 다만 아직 살 날이 남았고, 이왕이면 레이먼드 아저씨처럼, 모디 아줌마처럼, 애티커스 핀치처럼, 아서 래들리처럼, 착해서 고난받은 톰 로빈슨처럼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 위로를 할 땐 역시 먹을 걸 같이 주면서 해야 합니다. 콜라는 두 번 사람을 구했어요. 한 번은 이 책에서, 또 한 번은 코맥 매카시의 <로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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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덜 읽었습니다. 머리가 눅눅해져요. 재미없진 않아서 책은 끝까지 읽을테지만 작가에 대한 애정이 없으니 쉽진 않네요. 카레르 씨가 왜 불가지론자가 되어야 했는지,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가톨릭 신자였는지 결코 궁금하지 않은 작가 사생활까지 왜. 왜. 제가 알아야할까요..

결국 신앙을 부정하기 위해 건진 작가 생각들 중엔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부활한 예수를 제자들이 처음엔 못 알아보지요. 함께 숙식한 시간이 얼만데. 그에 관한 작가 생각입니다.

“이 이야기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동묘지에서 그는 동산지기였다. 길에서는 어느 나그네였다.
해변에서는 옆을 지나가다가 어부들에게 〈고기 좀 잡힙니까?〉라고 한마디 건네는 어느 행인이었다. 그는 그가 아니었고, 기이하게도 사람들은 바로 이 때문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그들이 항상 보고, 듣고, 만지고 싶었던 사람, 하지만 그들이 그를 보고, 듣고, 만지게 되리라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보고, 듣고, 만지게 된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며, 그는 그 누구도 아니다. 그는 우리 앞에 처음 나타나는 아무나이며, 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 자신이 말하곤 했던 사람, 그리고 이 순간에 그들이 머리에 떠올렸을 사람이다. 〈내가 배가 고팠지만, 너희는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목이 말랐지만, 너희는 내게 마실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너희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또 어쩌면 그들은 복음서들에는 기록되지 않지만, 한 위경에는 보존되어 있는 섬광처럼 번득이는 다음의 구절을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나무를 쪼개어 보라. 내가 거기에 있다. 돌을 들춰 보라. 그 밑에 내가 있다. 네 친구를 쳐다보라. 너는 네 하느님을 보고 있다.〉
아무도 그의 얼굴을 묘사하지 않은 것은 혹시 이 때문이 아닐까?”

내일이면 독서가 끝나 있길 바랍니다. 축축하게 젖은 두뇌도 말리고 싶고. 대체 프랑스 백인 남자의 자의식 뿜뿜이 나랑 무슨 상관이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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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가는 기분 창비청소년문학 75
박영란 지음 / 창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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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나는 죽지 않겠다> <편의점 가는 기분> 등 일련의 청소년 소설들 속에서, 경제적으로 소외된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왜 이렇게 성숙하기만 할까요. 고난이 인간의 성숙을 촉발한다는 것에 이의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 방향이 자로 잰 듯 반듯반듯 하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반듯하지 못한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이 인물들은 오히려 소외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요. 작가들이 어른임을 감안할 때 이런 성장통을 다룬 이야기들이 ‘어르신들의 좋~은 말씀’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불만만 잔뜩 늘어놓았는데 재미있어서 한숨에 다 읽었습니다. 흡입의 원동력은 미스테리입니다. 작가는 인물들의 사연을 시간 순서대로 늘어놓지 않습니다. 행동부터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갖게 한 뒤 양파 까듯 하나 하나 밝히고 있지요. 개발되지 못한 구시가에도, 날림공사 원룸건물로 빼곡한 신시가에도 가난은 포진해 있습니다. 그를 이겨내는 것은 열심히 공부해서 돈 많이 버는 사람 되서 나도 떵떵거리고 사는 데 있지 않고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를 보듬는 데 있구요.








* 그래서 불은 누가 질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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