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은 사도행전을 분석하며 작가가 추측한 기독교의 창안 과정에 관한 책입니다. 일인칭 서술자는 작가임이 분명하지만 또한 백 퍼센트 본연의 작가는 아닐테니 소설이란 양식이 어색하진 않지요. 한 유대인 랍비, 그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의 인생을 바쳐 기독교의 기틀을 만든 바오로, 옆에서 지켜보며 그의 행장을 기록한 의사 루카, 베드로•야고보 등 예수 곁에서 살았으나 바오로와 반목한 예수의 제자들과 동생. 작가는 성경의 이야기와 자신의 추측을 씨줄과 날줄 삼아 <왕국>을 써내려갔습니다.또한 이 책은 ‘나’의 배교의 여정이자 믿음을 파기하는 과정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가톨릭 교도로 살고자 파고들고 파고든 결과가 불가지론이지요. 신이 없다는 믿음조차 작가는 두려워합니다. 신은 윤리적이지도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습니다. 예수가 들려준 신은 그냥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누군가이기도 하지요.하지만 누군가에겐 이 책은 신앙 입문서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라르슈 공동체에서 만난 엘로디의 천진난만한 시선에서 ‘나’가 체험한 ‘왕국’을 작가는 감동어린 필체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왕국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엔 본인이 ‘똑똑하고 부유하며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당분간 프랑스 남자가 쓴 소설은 읽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