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덜 읽었습니다. 머리가 눅눅해져요. 재미없진 않아서 책은 끝까지 읽을테지만 작가에 대한 애정이 없으니 쉽진 않네요. 카레르 씨가 왜 불가지론자가 되어야 했는지,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가톨릭 신자였는지 결코 궁금하지 않은 작가 사생활까지 왜. 왜. 제가 알아야할까요..

결국 신앙을 부정하기 위해 건진 작가 생각들 중엔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부활한 예수를 제자들이 처음엔 못 알아보지요. 함께 숙식한 시간이 얼만데. 그에 관한 작가 생각입니다.

“이 이야기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동묘지에서 그는 동산지기였다. 길에서는 어느 나그네였다.
해변에서는 옆을 지나가다가 어부들에게 〈고기 좀 잡힙니까?〉라고 한마디 건네는 어느 행인이었다. 그는 그가 아니었고, 기이하게도 사람들은 바로 이 때문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그들이 항상 보고, 듣고, 만지고 싶었던 사람, 하지만 그들이 그를 보고, 듣고, 만지게 되리라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보고, 듣고, 만지게 된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며, 그는 그 누구도 아니다. 그는 우리 앞에 처음 나타나는 아무나이며, 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 자신이 말하곤 했던 사람, 그리고 이 순간에 그들이 머리에 떠올렸을 사람이다. 〈내가 배가 고팠지만, 너희는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목이 말랐지만, 너희는 내게 마실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너희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또 어쩌면 그들은 복음서들에는 기록되지 않지만, 한 위경에는 보존되어 있는 섬광처럼 번득이는 다음의 구절을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나무를 쪼개어 보라. 내가 거기에 있다. 돌을 들춰 보라. 그 밑에 내가 있다. 네 친구를 쳐다보라. 너는 네 하느님을 보고 있다.〉
아무도 그의 얼굴을 묘사하지 않은 것은 혹시 이 때문이 아닐까?”

내일이면 독서가 끝나 있길 바랍니다. 축축하게 젖은 두뇌도 말리고 싶고. 대체 프랑스 백인 남자의 자의식 뿜뿜이 나랑 무슨 상관이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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