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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달콤한 고통 ㅣ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달콤한 고통(sweet sickness)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은 어떤 걸까? 고통을 달콤하다고 할 만한 상황이라면 고통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뉘앙스가 아닐까? 그런 경우라면 달콤한 고통이란 역시 사랑의 아픔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작가는 소설 속 데이비드의 상황을 달콤한 고통이라는 말로 간결하게 정리한다. 아픔보다 더 큰 희망을 품는 데이비드의 모습을 보면 분명 그에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도 달콤한 고통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할 수 있는 상황인 걸까?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이 소설에서 사랑의 일그러진 모습인 집착이라는 감정을 한 편의 흑백 영화를 보는 듯하게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녀의 작품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건 바로 그 점이다. 피를 튀는 잔인한 장면이 넘치는 컬러 영화와는 달리 어떤 점에선 너무 잔잔하기까지 한 흑백 영화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에 담긴 세밀함과 치밀함이 읽는 내내 독자에게 공포감과 긴장감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소설 초반에는 연인이었던 애나벨을 향한 데이비드의 집착이 일반 사람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의 집착을 과연 그만의 문제로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의문은 데이비드에 대한 애나벨의 애매한 태도 때문이었다. 진부한 유교적 사고일지는 모르지만 결혼을 한 애나벨이 데이비드를 대하는 태도가 그의 집착을 더욱 심해지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은 소설을 다 읽을 즈음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데이비드를 대하는 애나벨의 태도가 애매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은 데이비드에 대한 공포,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끈질기게 그녀에게 달라붙는 데이비드는 어찌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스릴러 작품에 정신분석학 임상 보고서를 녹여낸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인간의 한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작가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