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드 포 라이프
에멜리에 셰프 지음, 서지희 옮김 / 북펌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컨테이너에 숨은 채 밀입국하는 불법 이주민들에 관한 영화나 드라마를 몇 편 본 적이 있다. 지구라는 공통의 공간에서 또한 시간적으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삶과 고난에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생겼지만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내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에멜리에 셰프의 <마크드 포 라이프>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이런 사회적 문제를 날카롭게 비평한 소설이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추리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이 작품은 「야나 베르셀리우스 3부작 시리즈」의 첫 작품이자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은 후 정말 첫 작품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탄탄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민국 관리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여주인공 어느 불법 이주민 소녀의 과거 기억과 현재의 사건이 번갈아 교차하면서 두 사건이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가 서서히 드러낸다. 특히 이 작품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불법 이주민들과 이들의 겪는 참상을 드러내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소재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한 아이의 아빠이기에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컨테이너에 숨어 밀입국을 시도한 소녀와 그녀를 지키기 위해 죽음 앞에서도 용감했던 그녀의 부모의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이 장면이 그렇게 크게 다루어지지 않지만).

 

하지만 그보다 더 아프게 다가온 건 자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밀입국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절망을 주게 된 현실이다. 여주인공 야나의 경우는 아주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 소설에서도 그려내듯이 대다수의 아이들은 희망도 꿈도 가지지 못한 채 한 줌 흙이 되어 사라졌을 뿐이다.

 

야나 검사도 행복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외견상으로는 누구나 부러워할 아버지와 직업을 가졌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못하는 인생, 따뜻한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삶, 문제가 생기자 결국 그녀를 포기하는 양부모의 모습을 보면 그녀에게도 행복은 결코 가질 수 없는 한낱 신기루였을지 모른다.

 

불법 이주민들의 약점을 이용하는 이들의 모습이 드러나고 그들에게 직접 벌을 주는 주인공의 모습이 통쾌하면서도 가슴 한 쪽에서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건 지금도 지구촌 어느 곳에서는 소설 속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에.

 

정답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조차 않는 우리의 모습, 깊이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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