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문학의 거짓말 ㅣ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5월
평점 :
저자 박홍규를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책은 <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였다. 다양한 저자들의 책을 읽었지만 박홍규 교수의 책만큼 명쾌하면서도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은 거의 없었다. 그 후 저자의 책이라고 하면 관심을 가지고 읽으려고 했다.
저자가 집필한 책들의 특징 중 하나는 시대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분석한 후 이를 날카롭게 비판한 저자 특유의 시각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특징이 상당히 두드러진다.
먼저 인문학 열풍이라는 말이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시대, 인문학이라면 모든 것을 제쳐두고서라도 읽어야한다고 하는 주장하는 시대에 마치 인문학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인문학의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책이라면 일단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제목만으로 끝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저자가 1부 첫 인문 이야기, 2부 고대 인문 이야기에 걸쳐 설명한 인문학의 폐해 혹은 진실은 상당 부분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물론 보통의 사람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주장도 있지만.
저자가 인문학을 비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책표지에서부터 주장하듯이, 인문학은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즉, 다수를 위한 인문학이 아니라 특권층의 권력, 이익을 위한 차별적이고, 비민주적인 인문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가장 깊이 다가온 내용도 첫 민주 이야기였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생각과는 다르게 세계 역사에서 최초의 민주국은 인도라고 한다. 카스트 제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주장이지만 네루의 <세계사 편력>을 보면 인도가 민주 사상, 민주 전통, 토론 전통 등에서 첫 번째임을 알 수 있다.
책머리에서 설명하듯이 이 책은 신분 위에 성립한 인문이 여전히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비판한다. 인문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비인문적인 행태를 신랄하게 꼬집기도 한다. 이런 저자의 비평 앞에서 다시 한 번 인문학의 본질을 생각해본다.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인문학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깊이 곱씹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