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때 천사였다
카린 지에벨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카린 지에벨의 소설은 화가가 붓으로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바를 하나씩 덧입혀가며 형상화하듯이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리 상태에 세밀한 색깔을 덧입혀 등장인물을 구체화시킨다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넘기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서 흐릿했던 그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는 한때 천사였다>에 나오는 두 인물 역시 그렇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프랑수아, 마피아 가족의 해결사로 살인을 업으로 삼은 폴. 평상시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눈에 뚜렷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먼 나라 혹은 딴 나라에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별종들일 뿐이다.

 

전혀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이 둘이 서로 만나면서 그들의 색깔이 어우러지고 또 점점 진해지면서 우리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잘 나가는 변호사인 프랑수아가 시한부인생이라는 판정을 받지 않았다면 과연 히치하이킹을 하는 폴을 자신의 차에 태워주었을까?

 

보색 관계인 두 사람은 예정에 없던 동행의 철로를 따라가면서 점차 서로의 색깔이 섞이며 중성색을 띄게 된다. 범죄하고는 거리가 먼 듯한 프랑수아가 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총을 잡고 뛰어드는 장면에서도, 거칠게 사랑하는 법밖에 몰랐던 폴이 서두르지 않고 누군가를 애정으로 손길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지에벨의 전작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책 소개에서도 나오지만 스릴러 소설이지만 탐정이나 경찰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프랑수아와 폴이라는 두 사람의 시선이 번갈아 교차하면서 내면에 숨겨진 이야기와 사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형식을 취한다.

 

또한 전작들과는 달리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와 같은 절대 악의 상징인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사회에 만연한 하지만 서로의 이익을 위해 못 본 채 넘어가는 사회적 문제들이 툭툭 튀어나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듯이.

 

두 명의 주인공이 끔찍한 범죄와 연루되고 마지막 순간에 놀랄만한 반전이 우리를 기다라는 유형의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스릴러 소설이라기보다는 따뜻한 감정을 찾아가는 감상적인 드라마 같은 소설로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두 사람에게 몰입하기가 좋다. 죽음을 앞 둔 프랑수아의 마음도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폴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간간히 느껴지는 긴장감과 함께

 

전작들과 조금은 다른 느낌이라 생소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깊이 몰입해서 소설 속 상황으로 빠져들며 두 사람을 응원했다. 지지 말라고, 죽음에. 사회에. 폭력에. 그 모든 걸 밟고 일어나라고. 두 사람 모두 한때 천사였고, 또한 앞으로 천사로 살아가리라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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