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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평점 :
얼마 전에 읽은 <요시와라 유녀와 비밀의 히데요시>란 책을 읽고 지금 이 시대는 국가나 민족을 구분하는 것이 어쩌면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제목을 보고 일본인 작가를 생각했던 내게 이 책의 저자가 한국인이고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에도시대라는 사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안토니오 가리도의 <시체 읽는 남자>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는 책이다. 이 소설은 중국 송나라 시대의 법의학자이자 판관이었던 송자의 일대기를 스페인 사람인 안토니오 가리도가 써낸 팩션이다. 서양인이 쓴, 그것도 현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13세기 송나라 시대의 이야기라니. 일단 앞서 말한 책처럼 이 소설도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보여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압도적 역사추리 소설이라는 소개말처럼 이 책은 송자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적인 내용과 황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해가는 스릴러, 범죄, 추리 소설적 요소가 합쳐져 소설적 재미를 극대화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초반부는 송자라는 인물이 인생의 쓴 맛을 겪은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이 많아 조금은 지루한 느낌도 없지는 않다. 물론 소설 첫 장부터 살인 장면이 나오고 살인 사건의 범인이 송자의 형인 송루로 밝혀지면서 긴장감을 주기도 하지만 송자의 모습이 어떤 점에서는 우리가 기대하는 판관 포청천의 모습이 아니라 전형적인 모범생의 표본이지만 한편으론 어리바리한 루저의 모습으로 비쳐지면서 CSI 등에서 봐왔던 인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은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서 소설적 재미가 확실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밍학원 최고 권위자 밍교수와의 만남, 룸메이트 회유의 계략, 선황제 폐하의 애첩이었던 후디에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점점 소설 속으로 빠져들다 마지막 반전을 통해 이 책의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에 사로잡히게 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법의학적 소견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대에 과학적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했던 송자와 그가 남긴 세원집록. 쉽게 접하기 어려운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소설이라는 흥미로운 장르로 되살려낸 작가의 역량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