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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본질
올더스 헉슬리 지음, 유지훈 옮김 / 해윤 / 2016년 9월
평점 :
북한의 핵실험의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핵실험의 세상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핵무기는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 모든 나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인류 전체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제3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미래를 그린 영화나 책들이 적지 않다. 올더스 헉슬리의 <원숭이와 본질>이 바로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그린 작품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이미 그가 그린 미래의 모습을 본 적이 있기에 이번 작품도 음울한 분위기의 사회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역시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멋진 신세계>와는 또 다른 미래 사회를 그린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들려주는 미래의 모습도 상당히 어둡다. 그런 어두움이 섬뜩한 이유는 그가 그린 미래 세계가 결코 소설 속 허구의 사회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원숭이와 본질>은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도 하나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그렇지만 과학의 이름 아래 무너져 내린 사회의 본질, 정신의 피폐함 속에서 어이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는 인류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특히 아인슈타인과 패러데이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미래를 파괴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모습은 무언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유용한 과학적 발명이라도 이를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렇기에 북한의 핵실험은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을 이용하는 원숭이처럼 북한의 핵무기도 그 생각을 알 수 없는 폭군의 손에 의해 한반도를, 그를 넘어서 세계의 멸망을 이끌 최악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세계를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마 이 책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도 그런 미래를 꿈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세상을 불러올지도 모를 과학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소설을 쓴 것일지도 모른다.
짧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쉽지 않다. 작가의 상상력을 쫓아가는 것도, 소설 속 비유, 패러디를 이해하는 것도, 대악마 벨리알을 섬기는 신흥 종교로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의도도 쉽게 파악할 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 멋진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을 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과연 이 소설이 주는 즐거움과 의미의 끝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