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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된 한패
플로르 바쉐르 지음, 권명희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다른 모든 설명은 제쳐두고 제레미와 베르트랑의 대화를 읽으면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치계급은 제 잇속만 챙기려고 해. 너 같은 관료들은 모든 일에 아예 손을 놓아버렸고. 문제는, 널 포함한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선거만 생각한다는 거야.”
“그럼 너나 헤지펀드 동료들은 돈 벌 궁리밖에 더 하냐.” (p.156)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면 모두가 한 통속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들 제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 저자는 그들을 가리켜 <조직된 한패>라고 부른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숨긴 채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시키는 이들은 결국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조직적으로 뭉친 패거리일 뿐이다(물론 세바스티앙과 그 친구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플로르 바쉐르의 <조직된 한패>는 그리스 회계장부 조작 사건을 통해 정치권력과 금융계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세상을 농락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금융협상의 달인인 세바스티앙은 회사로부터 그리스 회계 장부 조작 사실을 은폐하라는 지시를 받지만 이전과는 달리 이 사건의 진실을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각계각층에서 일하는 대학교 동창들을 찾아다니지만 친구들은 거대 권력에 맞서는 일에 선뜻 동참하려고 하지 않는다. 홀로 거대 권력에 맞선 세바스티앙은 결국 자살로 위장된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의 죽음에 친구인 앙투안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권력을 원하면 미친다. 권력을 지니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p.212)
세바스티앙의 친구들을 보면 권력에 미쳐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정말 권력이란 것이 그런 것일까?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인물로 변해 미쳐가다 결국은 자폭하고 마는 그런 것일까? 권력을 맛 본 자들은 그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한다. 한 번 빠지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고. 끝없이 파멸의 늪으로 끌어들이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라고.
익숙하지 않은 금융 관련 용어나 내용들이 적지 않아 처음에는 솔직히 몰입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특히 앙투안이 서서히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부터 재미가 더해졌다(앙투안과 클라라와의 관계도 궁금증을 더욱 커지게 만들었다). 마지막 결론도 시원했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 내 친구들은 어떤 모습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