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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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를 읽으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까칠한 듯 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품은 오베라는 남자, 그 남자는 결국 작가를 그려내는 듯한 모습이어서 그의 다음 작품이 무척 기대되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그리운 시대이기에 말이다.

 

이 책도 작가의 그런 마음을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이다. 조만간 일흔 여덟이 되는 할머니와 조만간 여덟 살이 되는 일곱 살배기 엘사의 이야기. 이전 작품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지만 또 많은 점에서 다르다. 무엇보다 소설의 시각이 일단 다르다. <오베라는 남자>에서는 할아버지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너무나 똑똑한, 그래서 또래 아이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하는 일곱 살배기 엘사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모든 이야기에 쏙 빠져들어갔지만 책을 덮은 후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한 마디는 바로 이 문장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곱 살짜리에게는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과에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p.11, 547)

 

소설의 첫 머리에 나온 이 한 마디가 엘사에게 남긴 할머니의 마지막 편지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내 마음을 두드렸다. 나는 다섯 살 딸아이에게 그런 슈퍼 히어로인가? 정말 그런가?

 

어렸을 때 나에게는 그런 슈퍼 히어로가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있다. 내가 힘들 때, 슬플 때, 기쁠 때, 낙심할 때 등 모든 순간에 나를 지지하고 나를 이끌어주는 슈퍼 히어로.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슈퍼 히어로는 아닌 것 같다. 너무나 미안하게도 말이다. 그래도 이번에 힘을 더욱 더 내보련다. 엘사의 할머니만큼은 아닐지라도 우리 딸아이도 여전히 나를 슈퍼 히어로로 보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밤을 꼬박 새며 읽었다. 할머니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는 살짝 눈물이 맺힐 뻔하기도 했다. 따뜻한 세상을 기대하지만 주변에 흘러넘치는 이야기가 너무나 무겁고 가슴 아픈 것들이기에 더욱 고마웠다. 조금이나마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따뜻함이 무엇인지를 들려주었기에 말이다.

 

프레드릭 배크만, 그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떨지 기대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 만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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