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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김지현 / 레드스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 뉴스를 보면 세상이 얼마나 흉흉해졌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특히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아이들을 학대하고, 심지어는 살해했다는 사건 이야기를 들으면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미래가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너무나 쉽게 아이들을 학대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대를 받는 것이 단지 부모나 교사들만의 문제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주어진 고통은 직접적인 고통을 가한 이들과 이를 방관한 이들이 공통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매일 같이 아파트 계단에 나와 홀로 앉아 있는 그레이스.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간절히 원한다. 이런 그녀를 보며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다 결국 광장공포증의 고통을 뒤로한 채 그녀에게 다가간 전직 브로드웨이 댄서 빌리. 작가는 이 둘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레이스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이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보살피는 진정한 이웃이 되어 가는지를 그리고 있다.
그레이스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각자가 나름대로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이 가진 상처들은 다른 누군가의 관계에서 서서히 치료되어 간다. 얼마 전에 읽은 윤대녕의 <피에로들의 집>이 떠오른다. 윤대녕 작가는 혈연이 아닌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과 이해로 연결된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과 서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어느새 사어가 되고 있는 시대이다. 이웃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시대, 그렇기에 이웃에 사는 아이가 고통을 받는 지, 홀로 사는 노인이 어떤 상태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시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우리는 정(情)의 민족인데. 더불어 사는 한민족인데.
그래도 이 땅에는 여전히 따뜻하게 이웃을 돌보는 이들이 있다. 이웃의 아픔을 보듬는 이들이 있다. 그렇기에 여전히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 희망의 불꽃에 모든 사람이 참여한다면, 아니 나부터 참여한다면 얼마나 환하게 빛나게 될까. 그것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