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그램 여신
한동오 지음 / 네오픽션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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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흔적 안 남기는 인간은 없어”(p.100)

 

소설을 읽는 내내 이 한 마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기기가 만들어낸 블로그나 SNS가 너무나 쉽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만들어주면서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흔적을 남기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문제는 알게 모르게 남긴 흔적이 내가 원하지 않는 흔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아무런 생각 없이 올린 흔적이 평생을 따라다니고 친구의 짓궂은 장난이 풀 수 없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흔적을 남긴다는 게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흔적 중에서도 정말 중요한 흔적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남긴 흔적이다. 저자의 말을 빌린다면 이미지라고 할까.

 

우리가 원하는 건 간단합니다. 고객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 상품을 사게 만드는 것. 우리가 계획한 대로의 삶을 살게 만드는 거.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진짜 마약은요, 바로 이미지입니다. 자본주의의 이미지.(p.303)

기업이 사람들에게 남기는 흔적, 즉 이미지는 고객들을 가두기 위한 하나의 감옥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서로에게 남기는 흔적은 어떤 걸까?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싶은 가면 아니면 진실한 모습? 그런 흔적 속에서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흔적이라는 관점에서, 저자 한동오는 내게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일단 이 책이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는데, 솔직히 정말 놀랐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작품을 쓴 걸까? 얼마 전에 읽은 <모던 마리아 못된 마돈나>의 작가 박초초도 첫 작품으로 나를 놀라게 했는데, 한동오 작가도 그렇다. 그들이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SF물을 거의 안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가상의 미래 그것도 평행으로 이어진 두 개의 시간대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을 통해 환상과 현실, 실체와 허상에 관한 철학적 사고를 펼쳐내는 장면들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탐욕스런 기업의 모습을 그린 장면들도 상당히 흥미롭다.

 

한동오, 그는 나에게 상당한 흔적을 남겼다. 혼란스러우면서 명쾌한 이 책 한 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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