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양보
정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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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 중에 벤처 투자 붐이 일었을 때 천 억 정도의 돈을 벌었다고 말하는 분이 있다. 그 분 말씀을 들어보면 그 당시 회사에 돈이 흘러넘쳤다고 한다. 회사로 들어오는 돈을 주체 못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투자를 하기도 하고, 저녁마다 수십, 수백만 원의 돈을 써가며 회식을 하고, 직원들 월급도 상여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나왔다고 한다. 2015년의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결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그 당시에는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강남의 벤처기업에서 일할 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앞에서 말한 지인 분이 떠올랐다. 그 분의 말을 농담처럼 받아들였는데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여러 면에서 불편한 내용들이 적지 않았다. 전직 중앙정보부 요원이었던 김도술 미래피아 회장. 벤처시대를 맞아 그가 강남에 위치한 빌딩에 불러들인 사람들. 술과 여자로 뒤엉킨 이들. 이런 그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김도술 회장. 도대체 그의 의도는 무엇일까?

 

김도술 회장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시간이라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물로 그가 끌어들인 미숙아들 중에는 분명 꿈꾸던 일을 해낸 누군가도 있다(소설 속에서 간단하게 설명하지만 누군지 바로 알 수 있는 그 사람). 하지만 김도술 회장이 제공한 돈과 시간은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쾌락에 빠져 흘려보낸 순간이 아니었을까(물론 제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한다는 표현도 있지만 정말 그럴 수 있었을까? 글쎄다.)

 

어둠의 양보해야 빛이 들어온다는 말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욕망과 탐욕이 넘치는 순간들 뒤에 정화된 세상이 온다는 것일까? 아니, 양보라는 말의 뉘앙스에는 그런 의미가 없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막연하기만 하다.

 

하지만 딱 하나 김도술 회장의 생각이 옳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 다른 모든 것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다 잃어도 사람이 남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이 부분은 나 역시 실제로 경험한 부분이라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런 사람을 얻는 방법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이 책이 주는 재미 중 하나는 실존 인물을 떠오르게 하는 인물들이 많다는 점이다.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지만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데, 그들을 묘사한 내용들이 상당히 흥미롭다. 실제로 그런 것인지도 궁금하고.

 

이런 시대든 저런 시대든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간다. 그런 흐름 속에는 어둠도, 그 뒤에 이어지는 새벽도 있다. 그 속에서 무엇을 찾을지는 결국 각자의 몫일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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