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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보자기 인문학
이어령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80년대 말에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하고 포스트모던 문명과의 관계를 조명했던 글들을 모아 일본에서 출판된 ‘보자기로 본 한일문화 비교’라는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으로, 한국어로 번역한 내용뿐 아니라 일본어 원문도 함께 실려 있다. 저자는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통해 우리의 전통적 가치나 문화풍속이 새로운 문명의 씨앗이 될 수가 있다고 말하며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저자는 보자기 대 가방, 요람 대 포대기, 벽 대 병풍 등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로 서양과 동양의 사상과 삶을 비교한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 이렇게 서양과 동양의 문화를 비교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흥미로운 글들이었다.
다양한 문화적 사물들을 통해 서양과 동양을 비교한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결국 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서양의 가방이나 요람, 건물의 벽 등은 하나의 틀을 갖추고 그 속에 사람을 혹은 사물을 담는다. 반면 우리의 보자기나 포대기 벽 등은 그러한 틀에서 벗어난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
저자는 일본의 보자기 ‘후로시키’와 영어의 ‘플렉시블’의 발음이 같고 용도도 비슷하다고 말하며 보자기의 융통성을 강조한다. 물론 언어적인 표현이 비슷하다고 성질까지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보자기에는 다양한 것들을 모두 받아들이는 포용성이 있다. 보자기는 크기에 관계없이, 생김새에 관계없이 받아들인다. 또한 받아들인 것을 내어놓은 후에는 자연스럽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보자기의 유연성이 우리나라를 둘러싼 강대국들과의 관계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열강에 둘러싸인 우리에게는 양자택일이라는 틀에 박힌 외교가 아니라 그들 모두를 적극 감싸 안는, 보자기 외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보자기라는 하나의 문화적 산물로 우리 문화와 정신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분명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문화와 정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 문화를 새로운 시대에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 시간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