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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도시의 연인
한지수 지음 / 네오픽션 / 2015년 10월
평점 :
폼페이. 서기 79년 베수비우스 화산의 엄청난 폭발로 사라져버린 도시. 그 불행의 흔적만큼 수많은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에서 다뤘던 어쩌면 그렇게 새롭지만은 않은 소재이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소재인 듯한 폼페이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저자 한지수의 작품 <파묻힌 도시의 연인>으로.
저자는 호텔 객실에 걸려 있던 소녀의 초상화를 본 후 작품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에서는 화산 폭발이 일어나기 전 폼페이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설의 여러 요소 중에서 캐릭터에 쏟아 부은 작가의 정성이 느껴진다.
소설은 갈리아(프랑스)에서 아름다운 금발의 창녀가 시체로 발견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건을 수사하는 중에도 여러 사람들이 독살을 당하면서 도시는 점차 알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든다. 이처럼 도시에 만연한 열락 속에서 오줌을 나루는 일을 하는 베루스는 세탁소 여주인의 노래 소리에 반하지만 그녀와의 신분 차이로 끝없는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한편 베루스의 주인이었던 에우마키아는 왠지 모르게 베루스를 편애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로 인해 그녀의 아들인 프론토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 품은 채 자꾸만 엇나가기만 하고 딸인 클라우디아는 그녀의 어머니를 시샘하여 근거 없는 헛소문을 퍼뜨리기도 한다.
살해 사건이 해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덤이 파헤쳐지고 사체를 훼손하는 범행이 계속되고 사체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가 암암리에 유통되기도 한다. 독살 염려증에 걸린 세탁소 주인 스테파누스는 자신만의 독살 치료를 하던 중 아내 플로시아에게 보낸 베루스의 연서를 발견하는데..
저자의 손끝에서 살아난 모든 인물들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사랑에 빠져 검투사의 길을 걷는 베루스와 그의 사랑에 빠져든 플로시아 뿐만 아니라 한 도시의 정치, 경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폴리비우스, 스테파누스의 끝없는 욕망, 결코 표현할 수 없었던 에우마키아의 가슴 아픈 사연까지 모든 장면들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에서는 화산 폭발로 사라진 후 쾌락의 도시라는 오명을 품은 폼페이가 아닌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군상들이 살았던 도시라는 느낌이 묻어난다. 사랑도, 질투도, 미움도, 음모도 모두 함께 뒤엉켜 있는 그런 도시 말이다.
소설 중간에 수록된 고대 폼페이의 모습이 더욱 생동감 넘치는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어쩌면 저자가 다 말하지 못한 그런 상상의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