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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평점 :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3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다. 만약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없다면 이는 결코 국가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광재의 <나라 없는 나라>는 결국 이 세 가지 요소 중 하나가 없다는 의미이리라. 세 가지 요소 중 무엇이 없다는 것일까, 그리고 나라 없는 나라는 어느 때를 가리키는 말일까?
상당히 흥미로웠다. 책 제목도 흥미롭고, 전봉준과 흥선대원군을 중심으로 동학 혁명을 풀어나간 관점도 흥미롭다. 고뇌하는 젊은 관료의 모습에 같이 마음 아파했고, 개혁이란 미명하에 일제를 끌어들여 나라 없는 나라를 만든 개혁파 인물들에게는 말로 표현 못 할 분노를 느꼈다. 무엇보다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감당하며 걸어간 전봉준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은 한국의 혼을 일깨우는 우리시대 대표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며 전주문학방송이 제정한 혼불문학상 2015년 수상작품이다. 문학상의 의도처럼 이 책에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대한민국의 혼을 깨우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며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생각하게 한 소설이다.
소설 곳곳에서 나라를 이루는 근간인 백성에 대해 그리고 백성이 모여 이룩한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들을 만났다.
조선을 삼키되 면면촌촌의 백성이 다 죽여라 나서면 덤비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망해도 그만이라 냉소하면 나라는 사라질 것입니다. 대감 말씀대로 사명에 불타는 백성이 많아져야 합니다. (p.102)
이 글을 읽으며 얼마나 가슴 답답했는지. 이 시대를 그린 듯한 모습이라 더욱 그러했는지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봐도 헬조선이니 개한민국이니 하며 나라가 망해도 그만이라는 냉소가 곳곳에서 넘쳐난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렀는지.
누가 물리쳐야 할 적인지는 머리와 마음으로부터 얻어지는 게 아니라 백성이 일러주고 있었다. (p.253)
순검들이 막아야 하는 것은 몇몇 특정 자객이 아니라 둑이 터져 물밀어 내려오는 어떤 흐름이며 민심이었다. 개명에 관한 자부심은 크고 노선이 옳다는 믿음 또한 굳건하였으나 그 오만을 뒷받침할 권세며 무력이며 백성의 신뢰 중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도리어 뭐라도 붙잡아 기대지 않을 수 없는 허약한 집을 지은 셈이었다. (p.263)
이 문장들은 또 어떠한가? 백성의 소리를 듣지 않는 작금의 현실을 들려주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민심을 저버린 위정자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나라 없는 나라>의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서 보이지 않는가?
그래도 전봉준의 마지막 말로 위안을 삼으려고 한다.
- 선생님, 저 재를 넘으면 무엇이 있습니까요?
- 몰라서 묻는 게냐? 우리는 이미 재를 넘었느니라. 게서 보고 겪은 모든 것이 재 너머에 있던 것들이다.
- 그럼 이제 끝난 것입니까?
- 아니다. 재는 또 있다.
- 그럼 그건 어쩝니까요?
- 그냥 두어도 좋다. 뒷날의 사람들이 다시 넘을 것이다. 우린 우리의 재를 넘었을 뿐. 갈이 멀다. 가자꾸나.
전봉준과 동학혁명의 이름 없는 민초들이 그들의 재를 넘어갔듯이 우리는 우리의 재를 넘어가야겠다. 우리의 역사가 끝없이 흐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