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고 읽는 장자 곁에 두고 읽는 시리즈 2
김태관 지음 / 홍익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장자는 바람이다. 그 앞에 산이 놓여있으면 자연스럽게 돌아가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 친 광야에서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나아가기도 한다. 때로는 부드럽게 꽃잎을 감싸기도 하고, 때로는 살랑살랑 나뭇잎을 간질이기도 하고, 때로는 거칠게 휘몰아치며 모든 것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바람과 같은 장자는 진정한 자유인이다.

 

요즘 사람들이 장자에 환호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을 얽어매는 수많은 고뇌의 사슬들을 떨치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인생을 즐기는 경지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장자는 곁에 두고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멋들어진 장자가 왜 맘에 들지 않는 걸까?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하는 장자의 말이 왜 그렇게 불편한 걸까? 한때는 그 누구보다 장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가 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애썼는데 말이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장자가 들려주는 삶은 너무 너무 멋지지만 현실의 나는 결코 그가 말하는 것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말하는 것처럼 살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이리 저리 생각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자는 너무나 완벽하지만 그에게서는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사람다움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그런 생각.

 

죽음을 이야기하며 공자를 가볍게 여긴 장자의 모습에서 그런 그의 모습을 보았다. 장자에게는 죽음이 가벼울지 몰라도 내게는 죽음이 가볍지 않다. 가볍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깊이 애통해 하고 싶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일까, 꼭 그렇게 죽음을 초월한 듯이 보여야 할까? 글쎄다.

 

장자의 어부편에 나오는 그림자 우화도 영 맘에 안 든다.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자기 발자국 소리를 싫어한 사람에게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그런데 진짜 그럴까?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 그늘 속에서만 살 수 있을까? 다시 햇볕이 내리쬐는 곳으로 나온다면 그림자가 다시 생길 텐데,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리석음을 알려주는 우화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 실제적인 해결책은 없는 듯하다. 그저 잠시 잠깐 피하는 방법만 있을 뿐. 그렇다면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며 조금은 어리숙한 삶을 산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장자는 바람이지만, 내게는 향기 없는 그림이기도 하다. 그저 한 명의 조금은 어리석고, 조금은 감정적이고, 조금은 갇혀 살지만, 그래도 사람의 향기를 내뿜으며 살고자 하는 내게는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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