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의 계보 - 2015년 제3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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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인생. 변화가 심하여 아무 보장이 없는 인생.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전에 나온 인생무상[ 人生無常 ]’에 대한 뜻풀이이다. 이런 의미의 인생무상을 가훈으로 삼은 집안이라면, 그것도 4대에 걸쳐 인생무상의 의미를 몸소 체험한 집안이라면? 그들의 삶이 궁금하지 않나? 과연 어떤 삶을 살았는지.

 

김무, 김성진, 김철호, 김유진. 이들은 각각 우리나라 근대사의 중심에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갔다. 인생무상의 가훈은 경상남도 김녕을 본관으로 한 시조 김은열의 구 세손 김녕군 김시흥을 시작으로 고려 시대에 평장사, 병부상서, 판도판서를, 조선조에는 판서만 세 명을 배출한 명문 정승 집안의 둘째로 태어난 김무로부터 시작된다.

 

김무의 인생은 말 그대로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시대가 살아갔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장남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둘째 동생. 그것이 바로 김무의 인생이다. 그는 형의 뒷바라지를 위해 하와이로 돈벌이를 나서는데 그 여정이 참 고달프다. 경마로 돈을 날린 후 경마 조작에 관련된 부산부둣가청년회 유대식을 위협해 하와이로 갈 여비를 마련한다. 우여곡절 끝에 온 하와이에서의 생활도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다. 밤마다 그를 쫓아다니는 조상들은 제외하더라도.

 

김무의 아들 김성진의 삶도 그 아버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의 죽음과 조국의 해방으로 부산으로 돌아온 김성진은 아버지 김무와 함께 하와이로 왔던 염씨 아저씨와 양담배를 팔다 아버지와 악연으로 엮였던 유대식과 또 다른 악연을 맺은 채 그로부터 도망치다 6.25 전쟁이 발발한 후 국군 의용병으로 참전한다. 전쟁 중에 그가 겪는 아픔은 아마 6.25를 겪은 모든 이들의 아픔이 아닐까 싶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들이밀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아픔.

 

김성진의 아들 김철호의 삶은 또 어찌 그리 기구한지. 전쟁에서 다리를 다친 후 경비로 겨우 삶을 이어가는 아버지와 양공주의 딸로 태어난 어머니. 판자촌의 삶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그의 삶에 들어온 이는 또 다시 유대식. 물론 유대식 본인은 아니지만. 굴곡진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그도 판자촌 철거 용역으로 활동하며 그늘진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알게 된 하나의 비밀. 그 비밀은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다.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이렇게 어울리는 삼대를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어찌 그리 우연이 엮이고 또 엮여 끝없는 악연으로 이어지는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는 극구 일어난 사실 그대로라고 우기지만 그 어거지가 더 부담스럽다. 그 어거지가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기에 더욱 더 그렇다.

 

사람의 인생이란 것이 이런 걸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하지만 그 내리막이 대를 이어 전해진다면 그건 너무나 비극적이다. 게다가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해 밀려들어간 삶이라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기나긴 삶의 역사를 열등의 계보라고 불렀나보다. 너무나 아프고도 시린 삶의 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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