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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사도 - 위대한 군주와 잔혹한 아버지 사이, 탕평의 역설을 말한다
김수지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10월
평점 :
한 때 개그콘서트의 간판 코너였던 <아빠와 아들>에서는 뚱뚱한 아빠와 뚱뚱한 아들이 음식을 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남들이 보기에 뚱뚱한 아들이 그 아버지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조차도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뚱뚱한 아들에게 하나라도 더 많이 먹이려고 했던 게 아닐까, 그게 아버지의 마음이니까.
그런 아버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 아버지도 있다. 스스로 아들을 죽음의 길로 나아가게 한 아버지. 뒤주에 가둔 채 아들이 죽어가도록 내버려둔 아버지. 결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아버지. 그렇다. 그는 바로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이다.
요즘 극장가를 뒤흔들고 있는 영화 ‘사도’를 본 관객들은 과연 역사적 사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사도가 정신질환을 앓았기에 영조는 어쩔 수 없이 사도세자를 죽여야 했던 것인지, 아니면 권력의 구렁텅이에 빠진 영조가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보인 것인지. 이 책의 저자는 후자의 입장에서 수많은 사료를 제시하며 영조와 사도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이복형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구설수에 휘말린 영조는 평생을 왕위에 오른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노력한다. 그런 노력의 일환이 바로 탕평책이다. 영조는 탕평책을 시행해 자신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론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를 위해 자신의 아들인 세자의 교육을 소론에게 맡기기도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력한 힘을 갖춘 왕권을 아들에게 넘기고자 하는 보편적인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히 배어나는 조치였다.
하지만 권력에 심취한 영조가 자신만이 진정한 권력자라고 생각하며 세자를 결국 하나의 총알받이로 사용하고, 세자의 기반이 되는 소론을 완전히 배제하는 행동을 하면서부터 세자를 향한 영조의 마음이 서서히 변해간다. 또한 권력을 향한 영조의 마음을 꿰뚫은 신하들이 둘 사이를 이간질하면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더욱 멀어지기만 한다.
도대체 권력이 무엇이기에 아버지와 아들이 사이를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했던 영조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자신의 아들보다도 더 중요했을까? 권력을 쥐고 흔드는 맛에 보이는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든다. 사도세자가 정신병자였든, 영조가 정신병자였든 둘 중의 하나는 분명히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고.
갑자기 영화 <사도>가 보고 싶어졌다. 이준익 감독은 어떤 시각에서 이 사건을 들여다보았는지 너무 궁금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