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푸어 소담 한국 현대 소설 5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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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다영과 우현과 성욱의 삼각관계가 주를 이루는 가벼운 연애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다영의 입장에서 바라본 이야기들 속에 다영의 속물근성(성욱의 재력, 우현의 외모에 대한 욕망)이 은연중에 드러나도록 가볍게 그려지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순한 사랑이야기를 넘어서는 이야기들이 조금씩 붙여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이 소설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흔한 소재일 수도 있다. 우현을 향한 진실한 사랑과 자신을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해 줄 성욱의 재력에서 갈등하는 다영의 마음은 태곳적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일지도 모른다.

 

그런 평범한 소재가 좀비라는 극단의 상황과 맞물려 상당히 흥미롭게 그려진다. 비타민 불법 투약 사건으로 사회봉사 5백 시간을 선고받은 다영은 사회봉사를 하기 위해 찾아 간 홍대에서 동갑내기 꽃미남 우현을 만난다. 집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우현과 헤어지기 싫었던 다영은 택시에서 내리지만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사고(?)가 아니라 피에 굶주린 좀비였다. 강북이 폐쇄되면서 강남으로 돌아갈 방법을 없어진 다영은 우현과 함께 좀비와의 목숨을 건 전쟁에 나서게 된다.

 

가벼워 보이던 다영의 모습이 이제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사랑과 현실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헤매기 시작한다. 그 뿐 아니다. 작가는 유토피아팰리스 입주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정의에 관한 문제를 던져 놓는다.

 

책을 읽으면서 씁쓸했던 것은 생존의 문제 앞에서 투쟁의 선봉에 섰던 전사에서 권력자의 앞잡이로 변해버린 엑스와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자괴감이었다. 신념을, 정의를 지켜야한다고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글쎄, 모르겠다.

 

가볍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무겁게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그래도 그 묵직함이 싫지는 않다. 나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한, 그러면서 희망을 엿보게 한 무거움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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