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네트의 고백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카린 지에벨의 소설은 섬뜩하면서도 끔찍하다. 소설의 바탕이 되는 사건도 끔찍하고,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면면이 너무 무섭고, 사건의 결말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다. 그 무엇보다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의 심리 묘사가 더욱 소름 돋게 한다. 그렇기에 소설을 펼치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가 없다.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범죄자라 불러야 할 이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그들의 마음에서는 어떤 생각들이 오고가는지 궁금해서 말이다.

 

이 소설도 그렇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나에게 닥친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끔직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런 끔직한 사건의 당사자들이 상당히 묘하다. 10대 소녀를 납치, 살해하는 연쇄 살인마와 보석상을 털고 도주 중인 무장 강도 형제.

 

일반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둘 다 나쁜 놈들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둘 사이에도 서로 다른 면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끝없이 악하기만 한 연쇄살인마, 반면 형제애와 납치당한 소녀를 구하려고 자신을 희생하는 인간애로 똘똘 뭉친 무장 강도 형제. 소설을 읽다보면 무장 강도가 저지른 죄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연쇄살인마의 행동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범죄자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리면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어느 순간에는 그 악을 넘어설 만큼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 소설이 재밌는 또 다른 이유 하나는 바로 범죄자들 간에 벌이는 두뇌 싸움이다. 살기 위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벌이는 이들의 두뇌 싸움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한다. 정말 기발한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보다 앞서 이를 예측하고 준비한 또 다른 계획. 이런 대결이 소설을 읽는 내내 짜릿함을 더해준다.

 

마지막으로 마리오네트가 되어버린 어느 여자의 독백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스톡홀름신드롬을 겪는 여인. 범죄의 피해자이면서 범죄의 방조자이자 조력자가 되어버린 그녀의 운명이 너무나 얄궂다.

 

내가 어디에 있든 그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

 

그녀의 이 한 마디가 나를 너무 가슴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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