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피시 - 제2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오사키 요시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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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한 수많은 사람들과 헤어진다. 그런 만남과 이별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그저 아련한 추억으로 몇몇 장면만이 남아 있곤 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잊어버렸던 기억이 생생하게 다시 떠오르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얼마 전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모르는 번호라 안 받을까 하다가 받았는데 받고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무척 친했는데 졸업 후 이상하게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친구였다. 놀라웠던 건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바로 그 친구의 얼굴과 이름, 그 친구와 보냈던 고등학교 시절이 갑작스레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경험했던 만남과 이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기억에 대한 말로 시작한다.

 

사람은 한번 만나 사람과는 두 번 다시 헤어질 수 없다. 인간에게는 기억이라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좋든 싫든 그 기억과 더불어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p.11)

 

소설은 포르노 잡지 월간 <이렉트>의 편집장인 야마자키가 새벽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전화를 건 이는 옛 애인 유키코. 그녀와 헤어진 지는 이미 1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와 그녀의 대화는 마치 어제도 만난 연인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소설은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야마자키와 유키코의 만남, 사랑, 이별을 들려준다.

 

작가는 완벽한 수족관 생태계를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물고기, 파일럿 피시를 내세우며 야마자키와 유키코의 관계를 설명한다. 야마자키에게 있어서 파일럿 피시의 역할을 한 이는 아마 유키코일 것이다. 그가 문인 출판사에 취직해서 편집장이 된 것도, 유키코가 자신과 야마자키의 파일럿 피시라고 말하는 와타나베와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딸일지도 모르는 가나를 만난 것도, 또한 가나를 통해 현재 여자 친구인 나나미를 만난 것도.

 

문득 관계라는 것이 당사자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그 누군가와의 관계가 다시 다른 이와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소설에 나오는 수족관의 모습처럼 이 소설 자체도 투명하고 깨끗한 느낌이다. 그 속에 담긴 만남과 이별의 이야기도 잔잔하지만 따뜻하게 다가온다. 잊어버린 옛 만남과 이별을 다시 떠올리며 남모르게 미소 지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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