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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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말해야 할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천예린을 찾아, 또한 자신을 찾아 헤매던 김진영과 같은 모습이었다. 도대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작가의 말처럼 부도덕한 러브 스토리 이면에 담긴 실존을 향한 애닮은 몸부림을 그린 작품이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김진영의 마음이 와 닿지 않는다. 아직은 그가 느꼈듯이 삶에 대한, 자신에 대한 억눌림과 옛 꿈을 잊어버린 채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던 이의 좌절감과 허무감 등을 가슴 깊이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끝없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김진영은 왜 그렇게 천예린의 뒤를 죽자 살자 쫓아가야 했을까? 그의 말처럼 천예린의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결코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저 상사에게 복종하고, 오로지 일밖에 모르고, 쉼 없이 일하던 그의 삶에는 그 자신의 모습이, 그의 옛 꿈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랬기에 책 표지에 그린 말라버린 나무 가지처럼 김진영의 내부는 끝없이 말라버려 그 중심은 언제나 텅 비어 있었던 것일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진영에게는 천예린 자체가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녀를 만나 새로운 자아에 눈을 뜨게 되며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지만, 그를 기다리지 않는 그녀처럼 시간은 그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느 순간 잡았다는 생각이 들 때조차 시간은 우리를 자애롭게 대하지 않는다. 마치 천예린이 어느 곳이든 그녀를 찾아오는 김진영에게 나의 피에로라고 말하며 나는 너를 결코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시간은 결국 천예린과의 육체적 관계에서 탈피한 김진영이 자유를 느끼듯이 시간의 속박, , 죽음에 이를 때까지라는 제한적인 속박에서 벗어나야지만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인간이 정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김진영의 마지막 말을 보면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머나 먼 길을 돌고 돌아 얻은 자유, 하지만 그 속이 텅 비었다면? , 어렵다.

 

<주름><침묵의 집>으로 발표했던 작품을 2006년에 개정한 후 이번에 다시 개정하여 발표한 작품이다. 다듬고 다듬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한 문장, 한 구절, 한 장면을 쉽게 읽고 넘기기 어려운 책이면서 읽으면 읽을수록 고민하고 또 고민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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