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멍충한 - 기묘한 이야기에 담아낸 인간 본성의 아이러니
한승재 지음 / 열린책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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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멍청하다는 표현을 아무에게나 쓰지는 못할 것이다. 그 속에 담긴 약간은 빈정대는 듯한 느낌과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 상대방의 분노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 제목으로 <엄청멍충한>이라고 썼다면, 저자는 누구를 향해 멍청하다고 말한 것일까(멍충한 이라는 표현이라 살짝 귀여운 느낌도 있지만)? 책 속에 나오는 인물을 향한 말일까? 아니면 책을 읽는 독자를 향한 말일까?

 

<엄청멍충한>을 쓴 작가 한승재. 낯선 그의 이름에 어떤 인물인가 찾아봤더니 이력이 독특하다. 전문작가가 아니라 건축가란다. 게다가 이 책을 출판한 계기도 특이하다. 자비로 출판한 책을 홍대 놀이터에서 팔다 열린책들의 눈에 띄어 정식으로 출판하게 되었단다.

 

이런 이력을 보니 책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최근에 열린책들에서 출판한 책들이 대부분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삶의 단면들을 담은 내용들이라 이 책도 역시 그런 흐름을 띄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러했다. 책에는 니안이라는 인물이 작가에게 건네 준 파일에 담긴 8편의 단편들이 담겨있다. 그것도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 낯선 곳의, 낯선 이야기를 담은.

 

사실 읽는 재미가 그렇게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읽으면서 무거운 느낌이 드는 내용들이 더 많았다. 이야기 속에 담긴 내용들은 비현실적이면서 환상적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은 데 현실을 더 정확하게 그려낸 듯한 모습에 놀라운 마음이 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지옥의 시스템>에서 헤르메스가 지옥에 만들어놓은 시스템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 혹은 기업의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어느 순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움직이고 그 속에 갇힌 이들은 잠시만 늦어져도 깊디깊은 심연으로 빠져드는 시스템.

 

우리의 세계를 낯설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도록 그려낸 기대되는 신인 작가를 만나게 해 준 작품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 <걔가 걔고 걔가 걔다>는 또 어떤 이야기일지 벌써부터 궁금증이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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