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인육 비사

세종 인육 비사 - 肝膽 (간담)
조동인 지음 / 미래지향 / 2014년 11월

제목부터 눈에 확 들어온다. <세종 인육 비사>. 조선의 역사에서 그 어떤 임금보다 성군으로 칭송받아 마땅한 인물이 바로 세종대왕이시다. 그런데 세종 인육 비사라니. 인육,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세종대왕 시절에 인육을 먹는 일이 생겼다니.

물론 이 모든 일은 소설 속 이야기이다. 좌포도청 4조 조장 조배호라는 가상의 인물이 처음부터 등장하여 이 소설이 팩션임을 알려주지만 각 장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일성록, 혹은 한국고전용어 사전 등을 인용하여 사실감을 높여준다.

소설은 좌포도청 4조 조장 조배호가 백정 골패네 정육소를 급습해 저장고에 담긴 인육들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저장고에서 발견된 인육과 수십 개의 주인을 잃은 얼굴들이 너무나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이런 끔찍한 장면은 서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극심한 한재로 고통 받는 백성들이 인육을 먹어야만 했던 처참한 장면들이 소설 곳곳에서 공포스럽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슬프게 펼쳐진다.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을 선보이며 여러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인간을 도축하는 백정 골패와 그를 둘러싼 비밀스러운 움직임, 임금에게 거짓 계문을 올리고 스스로 전옥서에 갇힌 이계린, 백성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며 현실을 돌아보고자 세종이 급파한 전리 김의정과 이인손, 반야산 범이라고 불리며 양반만 살해하여 그 인육을 먹는 돌쿤. 권문세가 출신으로 조선 사대부의 핍박을 받으며 돌변한 박윤회. 이들은 모습에는 조선시대 초기의 상황을 추측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박윤회의 경우, 고려시대 권문세가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수차례에 걸친 과거 시험을 보지만 계속해서 낙방하고 만다. 무반의 재능이 오히려 더 탁월했지만 문으로서 입신양명하고자 했던 박윤회의 꿈이 무너진 데에는 이조판서 김국겸이라는 자의 농간도 있지만 신진사대부와 대척관계에 있었던 박윤회의 출신성분이 문제가 된다. 어떤 의미에서 박윤회는 조선 초기의 권력 대립으로 인한 희생양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한 모든 일은 인간으로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금수만도 못한 일이었지만.

왕을 위한다는, 백성을 위한다는 대의 아래 오히려 인간으로서 결코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벌인 사람들. 그 뜻이 무엇이든지 간에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되는 순간 모든 의미가 사라진다는 것을, 그들은 진정 몰랐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