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나이프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잭나이프를 가지고 다니는 여자. 예사스럽지 않다. 자칫 살상무기가 될 수도 있는 잭나이프를 가지고 다니다니.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잭나이프는 호신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한 무기가 아닌가. 혹시 그녀의 내면에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학적인 성향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엠마뉘엘 베르네임. 20년 동안 총 다섯 권의 책만 발표한 작가. 그녀가 쓴 다섯 권 중의 하나가 바로 <잭나이프>이다. 20년 간 5권만 발표했다고 하니 이 책이 상당한 분량의 장편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잭나이프>140페이지 분량의 중편이다. 하지만 길지 않은 분량에 담긴 이야기는 흔하디흔한 소재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낯선 이야기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십년 동안 잭나이프를 지니고 다녔던 엘리자베스는 어느 날 그녀의 칼과 손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지만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분명한 건 칼과 손에 묻은 피가 결코 그녀의 피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다 며칠 뒤 문득 떠오른 낡은 사슴가죽 점퍼. 그 점퍼 밑으로 삐져나온 털스웨터를 자신이 칼로 찌른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이 찌른 남자가 누구인지, 그 남자는 왜 칼에 찔리고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그 남자를 찾기로 한다. 엘리자베스는 그 남자가 바로 런던 소극장에서 <리어 왕>을 연기하는 세실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 후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엘리자베스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이 소설은 극도로 간결한 문체 뒤에 숨겨진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물론 이런 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처음부터 끈 것은 과연 잭나이프라는 소품이 어떤 의미인가라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는 10년 동안 잭나이프를 가지고 다니다 세실의 털스웨터를 보고 무의식중에 그곳을 찌른다. 반면 세실은 칼에 찔리고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그녀를 신고하지도 않은 채 엘리자베스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 둘을 이어준 것은 결국 잭나이프(새디스트 성향 vs 마조히즘 성향)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세실을 오해하고 자신을 점점 바꿔 나간다. 그러다 마침내 진실을 대면한다. 작가는 명확하게 결말을 보여주지 않은 채 소설을 끝맺지만 세실을 만난 지하철에서 표출된 엘리자베스의 가학성이 결국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남긴다. 그 의미는....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본성을 숨긴 채 서로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방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고 있다. 화장과 액세서리를 한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지하철에서 자신을 칼로 찔렀던 그녀를 원하는 세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결국 사랑이란 그 어떤 모습이든, 자신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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