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

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
리처드 예이츠 지음, 윤미성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6월

리처드 예이츠는 사실주의 작가이다. 즉, 있는 그대로의 삶을 그려낸다. 그는 소설이라는 상자 안에 우리의 삶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그렇기에 읽는 이에게 부담이 없다. 내 삶이, 또한 내 주변의 삶이 그대로 소설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말 그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과 맨해튼을 무대로 펼쳐지는 열한 가지 이야기가 담긴 단편 소설집이다. 사는 시대와 장소가 다르기에 열한 가지 이야기에 모두 공감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듯한, 아니 바로 내 주변의 모습을 그려놓은 듯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평범한 소시민들은 살면서 어떨 때 고독을 느끼고, 어떨 때 두려움이나 좌절감을 느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질문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작가가 그려내는 주인공들은 우리의 삶 어딘가에서 함께 호흡하고 함께 살아가는 듯한 인물들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 첫사랑이 그렇듯 선생님을 사랑하는 어눌한 말투의 초등학생도 있고, 요즘 말로 루저의 삶을 살다 결국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인물도 있다. 결혼을 하루 앞두고 결혼 상대를 제대로 골랐는지 고민하는 인물도 있다. 장기간 투병하는 남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아내도 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정말로 너무나도 평범한 인물들이다. 그렇기에 내 모습 같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고독과 좌절과 두려움이 가슴 절절이 다가온다.

<정말 좋은 재즈 피아노>에 나오는 시드와 내가 다른 인물이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출세를 위해 윗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거래처 사람에게 굽실거리는 이에게 앞에서는 손가락질 하면서도 뒤에서는 행여 뒤처질까봐 노심초사하는 이가 어디 한 둘이겠는가? 어쩌면 내게는 시드의 모습도, 그런 시드의 모습에 분노하며 조롱하는 카슨의 모습도, 카슨에 끌려 자신을 오로시 세우지 못하는 켄의 모습도 담겨있을지 모르겠다.

<가장 좋은 일>에 나오는 랠프와 그레이스는 또 어떤가? 결혼을 하루 앞두고 서로를 바라보지 못한 채 상대방보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린 모습을 보이는 이들에게 가장 좋은 일은 오히려 역설적인 표현으로 다가선다. 나라고 이들과 크게 다를까?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못보고 엉뚱한 곳만 바라보는, 그래서 상대방을 고독으로 내모는 모습이 내게도 있지 않을까? 문득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표현이 곁에 있지만 제대로 나를 바라보지 않는 랠프의 모습을 그려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각 단편에 나온 모든 이들이 나를 즐겁게 한다. 이들의 삶 속에서 나를 찾는 재미도 솔솔하다. 내일 이들의 삶 속에서 찾아낸 나의 모습은, 나의 고독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