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체
이규진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습작만 하다 처음으로 책을 출판했다는 작가 소개를 보며 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졌다. 무언가 새로운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작품의 초반부는 지면 구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벼운 톤으로 묘사한 태윤이라는 인물 때문이었을까? 왠지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덮었을 때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책에 나온 모든 이들이 가슴 시린 아픔과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가슴이 저려올 수밖에 없었다.

 

아비인 사도세자의 죽음, 왕위에 올랐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암살시도 속에 가슴에 품은 여인마저 떠나보내고,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모를 아들을 그리워했던 정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가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차정빈, 자신의 진정한 신분도 알지 못한 채 나라에서 금지하는 천주교 신앙을 간직한 유겸, 계약에 의한 결혼이지만 정빈의 사랑을 끝없이 갈구하는 영신, 아들을 지키기 위해 멀리서 지켜보며 그 언제가 다가올 미래를 꿈꾸었던 자운향. 서얼 출신이지만 정조의 명을 받아 수원화성을 건축하면서 정빈, 유겸과 깊은 우정을 나누는 김태윤, 이 소설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 그 마음에 눈물을 품고 있었다.

 

파체에는 눈물을 거둬라라는 의미와 평화를 주소서라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파체에 두 가지 의미가 있듯이 이 소설에는 두 가지 내용이 담겨있다. 수원화성 건축을 둘러싼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와 이 땅에 천주교가 뿌리내리며 받았던 탄압의 역사가 뒤엉켜 있다. 각각의 이야기가 파체의 각 의미와 연결된다. 각자의 비밀을 간직한 이들에게는 눈물을 거두고 기쁨을 얻으라하고 탄압받는 천주교인에게는 평화를 주소서란 의미가 연결된다. 이렇게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 바로 수원화성이다.

 

너는 화성이 천국 같다 하였다. 이 성을 지을 때 나 또한 그런 바람으로 지었느니라...”

 

그곳은... 슬픔도 이별도, 아픔도 없는 곳이라 하옵니다.”(p.362)

 

정조가 아버지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인 채 슬픔을 견뎌낼 수 있었던 곳, 정조의 바람처럼 모든 백성이 한평생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 한 평생 떨어져있던 아비와 아들이 만날 수 있었던 곳, 정빈이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곳, 유겸의 바람처럼 마지막 순간 정빈이 삶의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었던 곳, 태윤과 유겸이 천주교의 교의를 곳곳에 숨겨 놓은 곳, 천주교 박해시기에 수많은 피의 순교가 이어졌던 곳, 그곳은 수원화성, 곧 파체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로 책이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느낌 때문에 책이 시시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는 이 책이 가진 흡인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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