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보다 -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의 순간들
마크 C. 테일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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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말로 먹고 사는 일을 한 적이 있다한시도 쉬지 않고 말하는 일이다보니 퇴근하고 나면 말하는 게 그 어떤 일보다 힘들었다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말이 점점 들었다내가 하는 말이 줄어들자 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그때 처음으로 침묵이 주는 의미를 생각했다.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다의도하지 않게 다시 침묵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처음 침묵의 의미를 생각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 경험한 침묵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침묵이라 그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침묵이 이어졌다침묵의 시간이 쌓이면서 침묵에도 여러 의미가 담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종교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마크 C. 테일러는 그의 저서 <침묵을 보다>에서 침묵에 다양한 종류가 있음을 설명한다저자가 말하는 침묵의 다양성이 내가 경험한 다양한 침묵의 의미와 똑같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침묵에는 서로 다른 의미를 쏟아내는 다양한 침묵이 있다.

침묵의 의미를 설명한 이 책은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책 첫머리에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보게 된 옛 사진들에서 침묵의 의미를 이끌어내는 장면까지만 해도 가볍게 읽겠구나 생각했지만 그 이후 하이데거를 필두로 다양한 철학자들의 침묵에 대한 정의를 끌어오면서 점점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더뎌졌다.

저자는 침묵의 의미를 없이(without), 전에(before), 함께(with), 안에(in) 등 전치사를 이용해 14개의 파트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내가 경험한 침묵과 유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발적인 의지력을 동원해 억제하고 있는 말하지 않는 것과 절대로 표현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구별이다(p.40)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침묵의 의미가 내가 경험한 침묵과 100프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저자가 어떤 의미로 이 문장을 썼는지는 어렴풋이나마 공감하게 된다.

오늘도 수많은 소리들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내게 저자가 설명한 침묵의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나의 삶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다침묵이 주는 고요함의 한없이 깊은 맛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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