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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리 dele 1
혼다 다카요시 지음, 박정임 옮김 / 살림 / 2021년 4월
평점 :
죽음은 우리의 삶과 그렇게 가까운 이야기도, 그렇다고 너무 먼 이야기도 아니다. 주변 어딘가에서 맴돌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우리를 찾아온다. 죽음이 그렇게 찾아올 때를 대비해 어떤 이들은 미리 유언을 남기기도 하고, 주변을 정리하기도 하고, 혹은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찾아가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 늘 함께 하는 죽음을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하는가? 이 소설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세상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수많은 기록들이 온라인에 혹은 디지털 기기에 남겨진다. 그런 기록들 중에는 다른 이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담긴 개인적인 이야기도 있고,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정보들일지도 모른다.
죽음 이후에 이런 기록들은 어떻게 될까? 더 이상 스스로 관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정보들은 알리고 싶지 않은 이에게 알려지거나, 범죄에 악용되거나, 누군가를 슬프게 하는 일에 사용될지 모른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데이터의 주인이 세상을 떠난 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데이터를 디지털 기기에서 삭제하는 일을 하는 업체가 있다. dele.LIFE이다.
혼다 다카요시의 <디리>는 의뢰인의 죽음을 확인한 후 그들이 생전에 사용하던 컴퓨터, 핸드폰 등에 수록된 정보를 삭제하는 일을 맡아하는 케이시와 유타로의 이야기로 1권에는 총 5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 단편마다 의뢰인이 남긴 데이터가 어떤 의미인지를 케이시와 유타로를 통해 들려주는데 이 작품이 2018년 여름 TV 아사히에서 방영되기도 해서 그런지 각각의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머릿속에서 그려지기도 한다.
5편의 이야기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스토커 블루스>였다. 스토커라는 말에 담긴 악질적인 의미가 먼저 강하게 다가오지만 쇼헤이의 삶을 들여다본 후 유타로에게 또한 독자에게 남은 인상은 안타까우면서도 슬픈 느낌이 묻어나는 블루스의 이미지이다.
1권을 다 읽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라면 어떤 데이터를 삭제해달라고 할까? 삭제할 파일보다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파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삶 속에서 또 다른 삶을 이어나가길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