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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평점 :
무언가 좀 답답한 기분이 들거나 축 처지는 기분이 들 때면 추리 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다. 영화를 보는 듯한 장면 묘사나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이 주는 매력에 빠지면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가디언> 선정 누구나 읽어야 할 소설, 미국추리작가 협회 선정 추리소설 100선, 영국추리작가 협회 선정 추리소설 100선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악의 본성을 탐구한 걸작 미스터리라는 <브라이턴 록>은 읽기 전부터 상당한 기대감을 갖게 한 작품이다.
핑키, 로즈, 아이다. 세 명을 축으로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기대와는 달랐다. 짜릿하고 통쾌한 장면들이 펼쳐지고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반전의 묘미가 넘치는 그런 소설은 아니다. 얼떨결에 조직의 우두머리가 된 열일곱 살의 보스로 악의 본성을 보여주는 핑키와 그런 그를 사랑하는 순수함의 결정체 로즈와 신문기자 해리의 죽음을 끝까지 파헤치는 아이다의 모습들이 어우러지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소설에 나온 이들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열일곱이라는 나이라면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할 뿐인데 그를 정말 타고난 악의 화신으로 바라보아야하는지, 또한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방편으로 결혼을 선택한 핑키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로즈를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라고 봐야 할지,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선택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기대와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지만 이 소설을 극찬한 이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80여 년 전에 세상에 첫 발을 내민 소설이지만 전혀 시대적인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고,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며 인간이란 존재의 본성을 세밀하게 그려낸 점에서도 그렇다.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을 장르소설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은 그런 선입견을 버리게 한다. 무겁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소설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말 그대로 걸작 미스터리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