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자본론
전영웅 지음 / 청아출판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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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럽게 쓰인 오만함과 너무도 자연스러운 선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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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의 사고 - 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포기하는가?
에릭 사댕 지음, 이선주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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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쓸 때 가장 자주 드는 감정은 속도감이다. 헤매지 않아도 되고, 막연한 생각을 바로 문장으로 받아볼 수 있다는 속도. 그 후에 따라오는 해결되었다는 안도감.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다.


에릭 사댕의 『멸종 위기의 사고』가 다루는 건 '생각이 무뎌진다'는 인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인간이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학습해온 능력 — 재능을 펼치고,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삶의 의미를 얻는 능력 전체가 함께 사라지고 있다고 본다. 사고는 그중 하나의 단면일 뿐이다. 그가 말하는 건 '사막화', 즉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쇠퇴다. 자멸. 셀프 쇠퇴.


우리는 지금까지 기계에 '행동'을 맡겨왔다. 계산하고, 운반하고, 저장하는 일. 생성형 AI 이후 위임의 대상이 바뀌었다. 이제 기계는 문장을 쓰고 판단의 근거까지 제시한다. 인간 외부의 노동이 아니라, 존재를 이루던 것

— 재능, 즐거움, 자존감... —

자체가 위임의 대상이 된 것이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생긴다. AI가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그럴듯해서... 아차 싶은 위험 생각에는 마찰이 있다. 고뇌가 있고 갈등과 조율도 있다. 오래 품으며 되뇌이며비로소 자기것으로 만드는 과정. AI는 그 마찰을 너무 빠르게 없앤다.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건 시간이 아니라, 사고에 딸려오던 재능과 자존감,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던 삶의 의미다. 쾌감까지


(중략)


사댕은 이 소멸을 두고 인간이 "바닷가 모래 위에 그려진 얼굴처럼"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갑자기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되면서 서서히 지워지는 것. 그래서 '멸종'이라는 제목은 과장이 아니다.


중요한 질문은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무엇을 맡기고, 무엇만큼은 끝까지 내가 하는가다. 자료를 찾고 문장을 다듬는 일은 맡길 수 있다. 그러나 문제를 발견하고, 판단하고, 의심하고, 자신의 생각에 책임지는 일까지 맡긴다면 존재의 자리가 좁아진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경계하게 된 건 AI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순응이다. 도구도, 지식도 빌릴 수 있다. 그러나 존재의 주도권까지 외주화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AI가 인간처럼 생각하는 순간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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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물 열전 1 - AI의 토대를 놓은 사람들 ㅣ AI 인물 열전 1
김경달 지음 / 이은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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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달의 《AI 인물 열전 1》은 AI라는 거대한 학문적 뼈대를 만들어온 여섯 명의 인물을 다룬다. 책을 읽다 보면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는 충분히 알게 된다. 지금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하는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기술이 아니라 수많은 연구와 실패, 집념과 논쟁이 오랜 시간 쌓인 결과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내 머릿속에는 조금 불경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래, 위대한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이 여섯 명은 6개의 입으로 하나의말읏ㄴ 한다.

"AI는 위험해!!"

사실 AI가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 많이 들었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고,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그래서 규제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익숙하다. 그런데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도대체 왜 위험한가.
그 위험은 어떤 과정에서 만들어지는가. 우리가 두려워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그리고 그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의 문 앞까지 데려가지만 정작 문을 열어주지는 않는다. 이제 뭔가 나오겠구나 싶으면 다시 인물의 업적과 생애가 등장한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자꾸 이야기를 하다 마는 느낌이다.
밀땅해?

여섯 명의 위대함은 충분히 전달되었지만,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AI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선뜻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납득이 불러와야한다)

물론 이 책은 한 권으로 끝나는 책이 아니라 4권으로 이어지는 시리즈이다. 어쩌면 내가 1권에서 너무 빨리 답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권은 인물을 소개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학문적 토대를 보여주는 시작에 불과하고, 내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는 뒤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문제는 한 권에 13,000원이라는 것이다. 네 권이면 52,000원이다. 더구나 책이 꽤 얇다. 13,000원을 내고 한 권을 다 읽었는데 중요한 이야기가 이제 시작될 것 같은 순간 끝나버리니 솔직히 조금 아니 많이 아까웠다. AI가 아직 나를 위협한 적은 없는데 벌써 내 지갑은 조금 위협받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얇다고 투덜거려 놓고 아주 나다운 일이 생겼다. 서울에 가야 해서 가방을 정리하다가 이동하면서 읽을 책을 고르는데, 내 손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AI 인물 열전 1》을 집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얇으니까. 🤣

얇다고 욕해놓고 얇아서 가방에 넣었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읽고, 지하철에서도 읽었다. 가벼우니 쉽게 꺼내게 되고, 내용도 위인전을 읽듯 어렵지 않게 넘어간다. 앞의 내용이 적당히 반복되니 띄엄띄엄 읽어도 흐름을 잃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혹시 이것까지 마케터의 작전인가?
“책이 너무 얇은데요?”라고 했더니
“그래서 당신이 들고 다니잖아요”라고 대답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AI 인물 열전 1》의 유용성에 대한 평가는 보류다. 1권만으로는 이 시리즈가 결국 어디로 가려는지 잘 모르겠다.

AI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AI의 역사를 인물을 통해 설명하려는 것인가,
AI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기 위한 긴 서론인가,
아니면
네 권짜리 AI 위인전인가.

그래서 3권과 4권이 더 궁금하다. 1권을 읽으며 계속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그래서’의 답을 찾으려면 다음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처음부터 계산된 구성이라면 꽤 성공적이다. 얇아서 아까웠는데 얇아서 들고 다녔고, 이야기를 하다 만 것 같아서 아쉬웠는데 이야기를 하다 말아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결국 이 책의 진짜 유용성은 이어지는 책들을 조금 더 읽은 뒤에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굳이 13000원으로 다음편과 그 담 편은 내돈내산?

편집자는 또 생각해야한다. 이 책이 독서가의 순응도를 끌어낼수 있는 책인가?
🤣☺️🌊 (점점 두꺼워진다면... 또)

이 책을 읽고 난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그다음 이야기는 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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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쩌다 과학을 믿게 되었을까 - 노벨 물리학상으로 읽는 의심과 논쟁, 합의의 역사
이근희.김갑진 지음 / 모어사이언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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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을 읽을 때마다 늘 비슷한 기대를 한다. 이번에는 얼마나 어려울까. 얼마나 많은 공식과 개념이 나올까. 그런데 이 책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노벨물리학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정작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물리학 자체가 아니었다. 새로운 이론이 어떻게 탄생했고, 기존의 상식과 어떻게 충돌했으며, 수많은 의심과 검증 끝에 하나의 과학이 되었는지를 따라가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읽다 보면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보다, 그들이 처음 던졌던 질문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과학은 위대한 발견의 역사가 아니라, 당연함을 의심해 온 사람들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이 책은 차분하게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가장 잘 읽힌 부분은 「거울 안 세상과 거울 밖 세상은 같을까」였다. 이상하게도 그 장을 읽는 내내 최근 본 넷플릭스 드라마 〈동궁〉이 떠올랐다.(사실 거울로 드나드는 여자도 떠올랐고, 유일한 아내?라는 웹소설도 생각났다. 캬캬캬 요건 나중에) 물을 통과하면 인간 세상과 평행하게 존재하는 귀신들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설정이다. 같은 궁궐이 있고, 같은 공간이 있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하지만 그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는 전혀 다르다.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그곳에서는 보이고, 귀신들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은 다시 인간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같은 공간처럼 보이지만, 같은 세계는 아니다. 드라마를 볼 때는 그저 흥미로운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거울을 사이에 둔 두 세계를 상상한다는 점에서는, 물리학도 아주 비슷한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거울을 보며 한 번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좌우만 뒤집혀 있을 뿐 결국 같은 세상이라고 믿는다. 물리학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현실에서 성립하는 자연법칙은 거울 속 세계에서도 그대로 성립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양전닝과 리정다오는 그 믿음을 너무도 단순한 질문 하나로 흔들었다. 정말 거울 속 세계도 현실과 같은 법칙을 따를까. 그 질문은 결국 우젠슝의 실험으로 이어졌고, 모두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거울대칭은 약한 상호작용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흥미로운 것은 새로운 답보다 새로운 질문이었다. 세상이 달라진 것은 새로운 현상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다시 묻지 않았던 질문을 다시 꺼냈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 지점에서 판타지와 과학은 갈라지는 것 같다. 판타지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만들고, 과학은 그 상상이 사실인지 끝까지 확인하려 한다. 하나는 상상력으로 세계를 넓히고, 다른 하나는 의심으로 세계를 넓힌다. 그래서 〈동궁〉이 재미있었다면, 이 책은 그 재미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가능해지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다. 결국 과학은 상상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에서 출발해 증거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은 늘 멀게 느껴졌다. 실험실과 공식, 천재들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덮고 나니 과학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거울을 보며 한 번쯤 품었을 법한 의문,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때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는 태도, 그 사소한 호기심이 결국 과학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과학은 참 이상하다. 가장 가까운 질문에서 시작하지만, 그 질문은 결국 우주와 자연의 가장 깊은 곳까지 우리를 데려간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멀어지고, 멀다고 느끼는 순간 어느새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에 와 있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과학을 믿게 된 것이 아니라, 과학이 끊임없이 의심하는 방식을 신뢰하게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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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불안을 다루는 법 - 에피쿠로스에게 배우는 덜 두렵고 더 단단한 삶
김용하 지음 / 헤이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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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두 종류의 책을 만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읽는 내내 "맞는 말인데... 잠깐만?" 하며 작가와 토론하게 만드는 책도 있다. 『서른의 불안을 다루는 법』은 분명 후자였다. 🤣

 

문장도 좋았고, 에피쿠로스 철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방식도👍 메시지에는 충분히 공감했다. 그런데 심심찮게 폭풍 댓글을 달고 싶은 부분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가장 먼저 걸린 것은 제목이었다. 왜 하필 '서른'일까. 책을 덮고 난 지금도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찾지 못했다. 저자는 인터뷰에서 20대는 아직 가능성이 열려 있고, 40대 이후는 어느 정도 삶의 윤곽이 잡히지만, 30대는 그 사이에서 가장 큰 불안과 절망을 마주하는 시기라고 했다.

글쎄, 정말 그럴까. 오히려 저자가 살아온 시대가 그랬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비교적 강했던 시대와 45세에도 조기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지금의 노동시장은 너무나 다르다. 하나의 직장에서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가던 시대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해야 하는 시대는 삶의 리듬 자체가 다르다. 그렇다면 '40대에는 삶의 윤곽이 잡힌다'는 전제 역시 지금 세대에게는 쉽게 적용하기 어려운 말처럼 들렸다.

책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내용은 서른만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았다. 불안, 욕망, 비교, 평온, 행복은 특정 나이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오히려 『현대인의 불안을 다루는 법』이라는 제목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과거의 자신(30살)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읽혔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까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됐는데.", "조금은 내려놓고 살아도 괜찮았는데." 이미 그 시간을 통과한 사람이 염려과 아쉬움을 담아 과거의 자신, 혹은 자식 세대에게 건네는 조언 같았다. 그래서 현재진행형으로 불안을 견디고 있는 30대의 숨 가쁜 호흡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것은 '평온'이었다. 에피쿠로스는 평온을 최고의 가치로 둔다. (중략) 그 이전의 나는 평온보다 도전이, 안정보다 성장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서른에게 과연 '평온'이 맞는 처방일까.

지금의 30대는 인생의 기반을 만드는 시기다. 직장을 잡고, 자리를 만들고, 가정을 꾸리고, 실패도 하고, 다시 도전하면서 40대와 50대를 준비한다. (심지어 40대, 50대에도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쉽게 말해 에너지의 방향이 밖으로 향하는 시기다. 그런데 책은 자꾸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한다. 물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의 30대는 치열한 하루하루와 불안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평온을 말하는게 과연 맞는 순서일까.

그렴 불안과 두려움은부정적인 것일까?

이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겨지지만 조금만 방향을 바꾸면 그것은 설렘이, 도전이, 추진력이 된다. 설렘과 두려움은 늘 함께 오고, 도전에는 반드시 불안이 따른다. 그래서 불안을 모두 걷어내라고 말하는 순간, 어쩌면 도전까지 함께 걷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이 책을 나쁘게 읽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읽는 내내 생각이 많아졌다. 반박도 하고, 고개도 끄덕이고, 밑줄도 긋고, 혼자 작가와 토론도 했다. 좋은 독서는 반드시 동의하는 독서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계속 질문을 던지는 책이 더 오래 남는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끝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비유가 하나 있다. 좋은 옷인데, 단추를 하나 잘못 끼웠다. 옷은 좋다. 원단도 좋고, 디자인도 좋고, 색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전체적인 균형이 흐트러졌다. 옷은 여전히 좋은데 입은 사람은 계속 어딘가 불편하다. 이 책도 그랬다. 에피쿠로스라는 철학은 충분히 가치 있었고, 문장도 좋았으며, 전달하려는 메시지에도 공감했다. 하지만 그것을 '서른'이라는 삶의 단계에 입히는 순간 끝내 단추가 하나 어긋난 느낌이었다.

 

저자는 1961년생이다. 고도성장기와 IMF를 모두 통과한 세대이며, 지금의 30대와는 전혀 다른 사회적 환경을 살아왔다. 그 시대를 통과한 사람에게 평온은 삶의 끝에서 얻은 지혜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30대에게는 아직 싸워야 할 시간이 더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시대를 초월한 철학을 이야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지금 시대의 30대를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좋은 책은 반드시 정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읽고 난 뒤에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에 여러 번 반박했고, 여러 번 공감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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