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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쩌다 과학을 믿게 되었을까 - 노벨 물리학상으로 읽는 의심과 논쟁, 합의의 역사
이근희.김갑진 지음 / 모어사이언스 / 2026년 7월
평점 :
과학책을 읽을 때마다 늘 비슷한 기대를 한다. 이번에는 얼마나 어려울까. 얼마나 많은 공식과 개념이 나올까. 그런데 이 책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노벨물리학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정작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물리학 자체가 아니었다. 새로운 이론이 어떻게 탄생했고, 기존의 상식과 어떻게 충돌했으며, 수많은 의심과 검증 끝에 하나의 과학이 되었는지를 따라가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읽다 보면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보다, 그들이 처음 던졌던 질문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과학은 위대한 발견의 역사가 아니라, 당연함을 의심해 온 사람들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이 책은 차분하게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가장 잘 읽힌 부분은 「거울 안 세상과 거울 밖 세상은 같을까」였다. 이상하게도 그 장을 읽는 내내 최근 본 넷플릭스 드라마 〈동궁〉이 떠올랐다.(사실 거울로 드나드는 여자도 떠올랐고, 유일한 아내?라는 웹소설도 생각났다. 캬캬캬 요건 나중에) 물을 통과하면 인간 세상과 평행하게 존재하는 귀신들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설정이다. 같은 궁궐이 있고, 같은 공간이 있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하지만 그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는 전혀 다르다.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그곳에서는 보이고, 귀신들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은 다시 인간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같은 공간처럼 보이지만, 같은 세계는 아니다. 드라마를 볼 때는 그저 흥미로운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거울을 사이에 둔 두 세계를 상상한다는 점에서는, 물리학도 아주 비슷한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거울을 보며 한 번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좌우만 뒤집혀 있을 뿐 결국 같은 세상이라고 믿는다. 물리학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현실에서 성립하는 자연법칙은 거울 속 세계에서도 그대로 성립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양전닝과 리정다오는 그 믿음을 너무도 단순한 질문 하나로 흔들었다. 정말 거울 속 세계도 현실과 같은 법칙을 따를까. 그 질문은 결국 우젠슝의 실험으로 이어졌고, 모두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거울대칭은 약한 상호작용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흥미로운 것은 새로운 답보다 새로운 질문이었다. 세상이 달라진 것은 새로운 현상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다시 묻지 않았던 질문을 다시 꺼냈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 지점에서 판타지와 과학은 갈라지는 것 같다. 판타지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만들고, 과학은 그 상상이 사실인지 끝까지 확인하려 한다. 하나는 상상력으로 세계를 넓히고, 다른 하나는 의심으로 세계를 넓힌다. 그래서 〈동궁〉이 재미있었다면, 이 책은 그 재미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가능해지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다. 결국 과학은 상상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에서 출발해 증거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은 늘 멀게 느껴졌다. 실험실과 공식, 천재들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덮고 나니 과학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거울을 보며 한 번쯤 품었을 법한 의문,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때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는 태도, 그 사소한 호기심이 결국 과학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과학은 참 이상하다. 가장 가까운 질문에서 시작하지만, 그 질문은 결국 우주와 자연의 가장 깊은 곳까지 우리를 데려간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멀어지고, 멀다고 느끼는 순간 어느새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에 와 있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과학을 믿게 된 것이 아니라, 과학이 끊임없이 의심하는 방식을 신뢰하게 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