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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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평단으로써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피에타는 조용히 울지 않는다.

그 조각상은 눈물을 흘릴 수 없지만, 대신 그 안에 담긴 이의 분노와 슬픔은 돌보다 단단하게 남는다.


우리가 마주한 한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부여잡고 끝끝내 외면하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몸짓, 침묵을 거부하는 고백이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살아남은 자였다. 무너진 시대 속에서, 사랑하는 이를 지켜내지 못한 죄책과 고통을 안고 살아남았다. 그는 돌을 깎는다. 말 대신 손으로, 울음 대신 망치질로, 그는 진실을 하나하나 조각해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한 점 – 피에타. 그건 단지 애도의 형상이 아니었다. 짓밟힌 자유, 꺾인 정의, 잊히지 않기를 바란 이름 없는 수많은 얼굴들의 집합이었다.


24년 겨울, 거리엔 군홧발이 먼저 깔렸다. 정당하지 않은 명령이 정당한 듯 내려졌고, 비명을 삼키며 살아남은 이들은 말 대신 고개를 떨궜다. 봄이 되자 파면이 선언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해방감은 없었다. 여전히 '그들'은 살아 있고, 말 많은 이들은 사라졌으며, "이제 그만 잊자"는 말들이 점점 더 자주 들려온다.

그럴 때 생각한다. 끝까지 지켜본다는 건 무엇일까.


눈앞에서 벌어진 불의를 외면하지 않는 것, 

내가 겪은 상처를 말하는 것, 

다른 이의 침묵에 기대어 잠들지 않는 것. 그 모든 것이 지켜봄이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무릎 꿇지 않는 방식이다.

지키지 못했더라도, 끝까지 기억하는 것.


이야기 속 그 남자는 결국 돌 위에 진실을 새긴다. 그는 자기 사랑을, 자기 시대를, 자기 실패까지도 외면하지 않는다. 그게 지켜보는 것이다. 

지켜본다는 건, ‘그녀’를 다시 끌어올리는 것이다.


우리에겐 아직 피에타가 없다.

우리는 아직 그 조각을 완성하지 못했다. 

어떤 이는 이미 망치와 끌을 쥐고 돌을 깎기 시작했지만, 더 많은 이가 필요하다. 이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피에타는 아직 땅속 어딘가에 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얼굴이기도 하고, 우리가 되찾아야 할 이름들이기도 하다.

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그 피에타는 영원히 흙 속에 묻힌다.

묵인된 채, 편집된 채, 삭제된 채.

그래서 다시 묻는다.

우리는 그 피에타를 세상 위로 다시 끌어올릴 용기가 있는가?


가슴속의 뜨거움을  단단한 돌 위에 세겨야한다. 

고단하고, 난해하고, 지루할 것이다. 

그러나 돌은 차갑지만, 진실은 뜨겁다. 

12월 3일!! 가슴엔 불덩이가 피어오르고, 머리는 차갑게 식게했던 그날을 기억하는 자만이 조각할수 있다.

그 조각은 반드시 말할 것이다. 

기필코 알릴것이다. 

단연코 전할 것이다. 

결코 조용히 울고만 있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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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진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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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 비틀린 일상의 균열 속으로, 뜻밖의 ‘음악’이 스며든다. 그것은 멜로디가 아닌 울림이며,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무언의 질문이다. 과연 우리는 이토록 거대한 고통 앞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책은 거창한 교훈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과 공백, 말해지지 않는 감정들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남겨진 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죄책감, 분노, 애도의 무게를 그리면서도, 슬픔을 이용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미덕은 바로 그 담담함에 있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천천히 찾아가는 과정이 오히려 묵직한 울림을 준다.

소리와 침묵, 기억과 망각, 음악과 고요함이 교차하는 장면들 속에서, 독자는 죽음을 견디는 일만큼이나 삶을 계속해 나가는 일이 고귀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이 책은 고통을 미화하지 않지만, 그것이 인간을 파괴하는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는, 조용한 그러나 뿌리 깊은 믿음이 느껴진다.
책을 덮으면 조용한 숙연함이 있다. 그리고 스스로 묻게 된다. 나에게도, 잃어버린 모든 것에도, 아직 멈추지 않은 노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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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가까운 적, 성병
엘렌 스퇴켄 달 지음, 이문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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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이 책은 성병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재미있다. 음흉하거나 불편한 분위기? 전혀 없다. 오히려 종종 유쾌하고, 때론 알쏭달쏭한 부분에서는 아주 명쾌하다. 그 흔한 낯뜨거움 없이도 성병이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이렇게 일상적으로 풀어낸 것이 멋지다.
독자와 나란히 앉아 커피 한 잔 하듯, 편하게 말하지만 내용은 꽤 진지하다. 클라미디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매독은 왜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는지, 임질은 어쩌다 항생제와 줄다리기를 하게 되었는지. 배경 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최신 의학 정보도 꽤 충실하게 담겼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공포심이나 죄책감에 호소하지 않는다. 대신 ‘알아야 지킬 수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성병에 걸렸다는 것이 끝이 아니라, 어떻게 대처하고 관리해야 하는지를 지극히 일상적이고 실용적으로 말한다.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설명하듯, 차분하고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간다.

또한 이 책은 질병에 대한 설명을 넘어서, 섹슈얼리티와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성병 그 안에 작동하는 사회적, 문화적 구조를 짚어낸다. 예컨대 ‘왜 어떤 성병은 수치심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는가?’ 같은 질문들이 그렇다. 성병을 둘러싼 낙인을 조심스럽게 벗겨내는 작업이 돋보인다.

딱딱하거나 지루할까 걱정할 필요 없다.
챕터마다 핵심이 분명하고, 중간중간 삽입된 일화나 사례 덕분에 몰입도도 좋다.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읽을 이유가 분명하다. 성교육을 이미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분명히 새로운 시선을 제공할 것이다.

이 책은 ‘성병’이라는 주제를 낯설지 않게, 그러나 가볍지도 않게 풀어낸 보기 드문 책이다. 혼자 읽어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 읽어도 좋다. 불편함을 이기는 정보, 그리고 건강을 지키는 감각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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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과학이다 - 달리기를 위한 영양, 주법, 트레이닝, 부상, 보강 운동, 마라톤에 대한 모든 것
채찍단 지음 / 북스고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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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달리기를 위한 팁’은 이 책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예를 들어, “달리기 끝나고 맥주 한 잔, 괜찮을까?”라는 질문부터, “밥 먹고 바로 달리면 왜 배가 아픈지”, “실내 러닝과 야외 러닝의 차이”까지, 달리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궁금했을 사소하지만 중요한 질문들을 위트 있게 풀어낸다. 중간중간 나오는 미니 상식들도 톡톡 튀고 재미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무겁지 않게 깊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전문 용어가 나와도 겁먹을 필요 없다. 저자는 마치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러닝 메이트처럼, 지식을 부담 없이 나눠준다. 동시에 달리기를 ‘과학’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면서, 독자 스스로의 몸을 더 잘 이해하고 돌볼 수 있게 해준다.

달리기를 이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든든한 가이드북이 되고,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응원서가 된다. 무릎이 아픈 날에도,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나서고 싶은 날에도, 이 책은 뛸 준비가 되어 있다. 결국 달리기도, 사람도, 알고 나면 더 사랑하게 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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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불안 - 폭주하는 걱정을 멈추는 생각 정리 솔루션
닉 트렌턴 지음, 박선영 옮김 / 갤리온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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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제목에 이미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과도하게 생각하는 습관은 때때로 불편하고 피곤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생각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깊이와 관찰력을 조명하고, 그것을 삶에 잘 녹여내는 방법을 차분히 이야기한다.


책은 '패닉하고 갇힌 상태'에서 시작해서, '관찰적이고 의도적인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뇌의 구조와 감정 반응, 그리고 습관화된 사고방식에 대한 설명을 간결하고 쉽게 풀어내면서 독자가 자신의 패턴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불안을 진정시키는 기술이나 마음챙김 방법도 소개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가’를 함께 따라가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다그치지 않는 태도다. 어떤 페이지에서도 “이래야 한다”는 강요는 없다. 대신, 지금의 나를 먼저 알아주고, 그 위에 차분히 길을 놓아준다. 마치 “괜찮아,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것 같다. 저자는 단순한 조언자가 아니라, 같이 걷는 동행자에 가깝다.


본문에 등장하는 질문들도 인상 깊다. '이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내가 두려워하는 건 실제로 일어날 일일까, 아니면 내 해석일까?' 같은 질문들은 읽는 내내 생각을 멈추지 않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복잡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한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독자는 자신의 불안이나 과도한 생각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익숙해진다.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고,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은 매우 사적인 듯하면서도 보편적인 경험이라, 독자가 자신의 속도대로 따라갈 수 있다.


《Wait! I Need to Overthink!》는 빠른 정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대신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불안을 마주한 사람에게 '이렇게 하면 나아질 수 있어'라고 말하기보다, '나도 그랬어, 그리고 이렇게 지나왔어'라고 조용히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이 좋다.


과하게 생각하는 성향이 꼭 단점일 필요는 없다는 이 책의 시선은, 많은 이들에게 위로이자 새로운 가능성이다. 복잡한 감정에 휘둘리는 날들이 잦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곁에 두고 천천히 읽어보길 추천한다. 다 읽고 나면, 생각이 줄어들었다기보다는 생각과의 관계가 조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꽤 단단하고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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